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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경제포럼] 2005년 노동정책 방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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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 중앙일보 월례경제포럼은 지난해 12월 28일 김대환 노동부장관(中)을 초청, 본사 대회의실에서 토론회를 열었다.최승식 기자

중앙일보 월례 경제포럼은 지난해 12월 28일 김대환 노동부 장관을 연사로 초청해 토론회를 열었다. 김 장관은 '2005년 노동정책 방향'이란 제목으로 주제발표를 했다. 토론 참석자들은 지난해 노사관계와 정부의 비정규직.일자리 창출 정책에 대해 이견을 보이면서도 법과 원칙에 입각한 일관된 노동정책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정부의 인위적인 일자리 창출 정책이 문제가 많다는 데도 같은 의견이었다. 이에 대해 김 장관은 노사관계는 한국 사회의 모든 문제가 응축된 축소판이기 때문에 해결이 쉽지 않다면서, 새해에도 법과 원칙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펴나가겠다고 답했다.

▶사회(김정수)=2004년은 노사관계나 노동문제에서 분수령이 된 한 해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 정부가 개별 기업 노사 문제에 간여하지 않고, 대형 파업에서도 법과 원칙을 지킨 듯합니다.

▶좌승희=예년에 비해 정부가 중심을 잡고 잘했습니다. 관건은 전국공무원노조(전공노) 문제입니다. 공무원들의 눈치를 보면서 전공노 문제를 풀어가지나 않을까 걱정됩니다.

▶남성일=노사문제가 대화와 타협에 의해 해결되려면 법과 원칙이란 '게임의 룰'이 확고해야 합니다. 2004년은 이런 게임의 룰에서 일관성이 있었다고 평가할 만합니다. 그러나 노사 간 파트너십이 협력적으로 형성됐는지는 의문입니다. 단적으로 민주노총을 파트너로 볼 수 있겠는가 하는 점입니다.

▶김대환 장관=힘들더라도 법과 원칙을 지키는 방향으로 갈 것입니다. 저는 노사관계 문제를 LP판과 CD판으로 비유하곤 합니다. 음악을 편리하게 듣는 데는 CD판이 좋지만, 제대로 들으려면 LP판으로 들어야 합니다. 저도 LP라는 법과 원칙(Law & Principle)의 틀 내에서 타협과 대화(Compromise & Discussion)라는 CD판을 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병훈=2004년은 그런대로 잘 넘어왔지만, 2005년은 걱정이 앞섭니다. 경기가 나빠져 고용 조정과 관련한 악성 분규가 빈발할 가능성이 큽니다. 그 핵심에 민주노총이 있기 때문에 정부가 민주노총에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봅니다. 싫든 좋든 민주노총이라는 영향력 있는 집단을 끌어안아야 합니다.

▶최정표=안정화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노사관계에 대한 평가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일련의 노사분규에서 노조가 밀린 것을 두고 대화와 타협에서 나온 안정화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노조의 의식은 바뀌어야 하지만 사용자 측도 개선 의지를 보여야 안정화됐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김 장관=노사정을 통한 '사회적 대타협'은 2005년도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민주노총이 조건부로 노사정에 참여하겠다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저는 민주노총이 조건 없이 노사정위원회에 복귀하는 게 국민 대다수의 여론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민주노총이 조건부 복귀를 고집하면 '사회적 대타협'을 포기할 수도 있습니다. 전공노 문제도 원칙대로 대응할 생각입니다. 그게 국민 여론이기도 하고요.

▶이병훈=정부가 민주노총에 대해 '엄한 아버지'로만 대응해선 안 됩니다. '자애로운 어머니'가 비뚤어진 자식을 올바른 길로 이끄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습니다.

▶좌승희=그러나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저질러지고 있는 편법이 더 문제입니다. 가령 해고를 위해 노사 '협의'만 거치면 되는 사항을 노조는 '합의'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경영민주화라는 것도 이상은 그럴 듯하지만, 현실에서는 문제가 많습니다.

▶이제민=외환위기 이후 우리나라는 노사정위원회 같은 거시적 노사협조주의에 매달려왔습니다. 이젠 일본과 같은 사업장 차원에서의 미시적 협조주의에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가령 종업원 지주제 같은 것을 활성화해야 합니다. 경영권 방어에도 도움이 되므로 사용자도 반대하지 않을 것입니다.

▶박원암=생산성이 떨어졌는데도 임금은 떨어지지 않습니다. 이런 근본적 문제가 남아 있는데, 파업이 많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해서 노사안정이 됐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김 장관=노사관계가 근본적으로 안정됐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앞으로 많은 갈등이 있겠지만 원칙대로 밀고 갈 생각입니다. 우리사주조합제도(ESOP)는 좋은 방안입니다. 노조가 우리사주조합을 겸하고 있어 이를 노사협상에 활용하는 사례가 일부 나타나고 있지만, 이런 부작용을 줄이면서 노사안정에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찾을 생각입니다.

▶박원암=김대환 장관이 노사문제에 대해 갖고 있는 시각과 접근 방법은 분배를 우선시하는 참여정부의 스펙트럼과 맞지 않는 듯합니다. 이정우(청와대 정책기획위원장)-이헌재(경제부총리) 갈등이 이정우-김대환 간에도 나타날 것 같습니다.

▶김 장관=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웃음). 참모는 이상을 얘기할 수도 있지만, 장관은 현실주의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또 이념은 현실에 대입해 검증받아야 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이념적.정치적으로만 생각한다면 갈등이 생기겠지만, 크게 우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사회=이제 비정규직 문제와 일자리 문제를 토론해 봅시다.

▶남성일=비정규직 대책 법안은 노동계 눈치를 많이 본 것 같습니다. 계약직 기간을 3년으로 제한해 놓으면 오히려 고용을 제약할 것입니다. 또 파견근로 가능 업종을 따로 명시(포지티브 리스팅)하면 안 됩니다.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드문 데다 그나마의 일자리도 없어집니다.

▶이병훈=그러나 '비정규직이라도 좋다, 일자리만 만들자'는 식의 발상은 곤란합니다. 일자리 숫자가 줄었다는 것도 문제지만 양질의 일자리가 크게 줄었다는 것이 더 큰 문제입니다. 중간층 일자리를 늘리는데 역점을 둬야 합니다.

▶신광식=정부가 공적 자금을 투입해 사회적 일자리를 창출하려는 것은 문제가 많습니다. 비시장적인 데다 낭비적인 정책으로 끝날 것입니다. 현 정부에선 일자리가 생기지 않는 원인이 뭔지 진지하게 고민하는 자세가 부족하지 않나 하는 느낌입니다.

▶정운영=경제성장률을 1% 올리기 위해 정부가 5조원을 쓴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5조원이면 국내총생산(GDP)의 1% 정도 아닙니까. 결국 GDP 1%를 늘리기 위해 GDP 1%를 투입하겠다는 발상인데, 일자리 창출을 위해 이런 우를 범해선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남성일=고용 비용보다 생산성이 낮아 일자리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사람 하나 고용하는 비용이 너무 큽니다. 해고하기 힘들고, 전환 배치도 노조의 동의를 얻어야 합니다. 이게 역전되지 않는 한 일자리 창출은 불가능할 것입니다. 노동계급이 사회적 약자인 시대는 분명히 지났습니다.

▶박원암=정부는 2004년 일자리가 40만개가 늘었다거나 공공부문 일자리를 늘렸다고 말합니다. 성장과 투자는 안 됐는데 일자리가 늘었다면 결국 노동력의 질이 떨어졌다는 얘기입니다. 보조금을 지급하는 정도의 정책으론 '고용 없는 성장'이라는 구조적 문제를 극복할 수 없습니다.

▶노성태=요즘 5%가 성장률의 한계인 것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짙습니다. 그러나 5% 성장해도 일자리가 안 생긴다면, 또 물가 등 큰 부작용이 없다면 7~8%로 성장률 목표를 더 높이 잡을 필요가 있습니다.

▶최종원=정부와 공기업 쪽에서 억지로 사람을 늘리고 있는 바람에 부작용이 많이 생기고 있습니다. 공기업의 경우 1998년 이후 거의 채용하지 않다가 요즘 대거 뽑는 바람에 내부 직급체계나 인력배치 등이 제대로 안 되고 있습니다.

▶김대환=정부가 잘했다는 것은 아닙니다. 노동수요 정책은 초보 상태고 인력수급전망에 대한 인프라도 취약합니다. 고민은 많이 하는데, 뚜렷한 수가 보이지 않습니다만 일자리는 새해 노동부가 가장 역점을 두는 과제입니다.

▶최정표=50대 실업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임금 피크제의 활성화에 정부가 좀더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김 장관=노동시장이 계속 압박받으면 임금피크제 방향으로 갈 것입니다. 다만 노조가 이를 수용해야 합니다.

정리=이현상 기자
사진=최승식 기자<choissie@joongang.co.kr>

***김 장관 모두발언

노동부는 2004년 정부 부처 업무 평가를 잘 받았다. 전년엔 22개 부처 중 20위였지만, 이번엔 3개 부처와 함께 '우수'등급이었다. 취임하면서 노사 양쪽에 치우치지 않는 가운데 무게중심을 잡고 균형잡힌 정책을 펴자고 강조했고, 실제로 충실하게 지켜온 것이 좋은 평가를 받은 것 같다.

전반기엔 노사관계, 하반기엔 비정규직 문제 등 고용 문제에 중점을 뒀다. 노사관계는 법과 원칙의 틀을 확고히 하면서 그 바탕 위에서 대화와 타협을 시도하려고 애썼다. 가능한 한 정부는 뒤로 물러나 노사가 대화와 타협을 통해 파트너십을 갖도록 했다. 그런데 양자 간 불신이 깊은 때문인지 잘 안 되는 경우도 있었다. 이럴 때 정부는 법과 원칙이란 게임의 룰을 적용했다. 그래서인지 노사관계가 상당히 안정됐지만 아직도 멀었다. 앞으로도 힘들겠지만 법과 원칙의 축을 확립하기 위해 노력하겠다. 노와 사, 특히 민주노총은 변해야 한다.

비정규직은 2003년부터 80만명씩 늘어나는 등 급속히 증가하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저성장 기조의 고착화▶서비스 중심으로의 산업구조 변화▶여성 고용의 확대▶고용 과보호 제도 등의 요인 때문이다. 따라서 비정규직을 법으로 보호하고 임금.근로조건의 차별 대우를 시정하는 것이 바람직한 대안이다.

앞으로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그룹별로 정책을 달리할 것이다. 지금 노동시장은 대기업 노조가 중심이 된 노동시장과 중소기업 등 취약 근로계층으로 구성된 노동시장으로 양극화돼 있다. 한쪽은 고용 조정이 사실상 불가능할 정도로 경직돼 있고, 다른 한쪽은 유연성이 지나치게 높다. 정부는 경직된 곳은 풀고, 유연성이 심한 곳은 법으로 보호할 것이다.

새해 역점 과제는 일자리 창출이다. 경제가 성장하고 투자가 활성화돼야 일자리가 생기겠지만, 그때까지 정부가 손 놓고 있을 순 없다. 정부는 투자 활성화에 4분의 3 정도 비중을 둘 것이고, 나머지 4분의 1 정도는 사회적 일자리 창출에 역점을 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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