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플 라이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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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서울 서소문 호암갤러리에서 조선목가구대전이 열리고 있다. 사랑방 가구, 안방 가구, 부엌가구로 대별되는 전시장에서 조선조 지식인들의 삶의 멋을 엿볼 수 있다. 그 중 눈길을 끄는 것이 두평 남짓한 사랑방에 배치된 가구들이다.

주인이 앉는 상석에 종이 돗자리(지승)를 깔고 그 앞에 얕은 책상(書案)을 놓고 왼쪽에 필기도구와 연상(硯床)이 자리한다. 왼쪽 벽켠에 반닫이, 오른쪽 벽에 문갑, 모서리에 사방탁자가 놓이면 기본을 갖춘다. 여기에 소품으로 고비(편지꽂이)가 벽에 걸리고 지통·갓통·바둑판 등이 빈자리를 차지한다. 어느 것 하나 지나치게 크거나 화려하지 않다.

모든 가구가 단순화되어 있다. 단순성 속에 나뭇결(木理)의 대칭적 미가 살아있다. 못 하나 박지 않았지만 틀어지거나 흔들리지 않는 견고함이 조선 목가구의 특징이다.

홍만선(洪萬選)이 쓴 『산림경제』에선 "방안에는 서화를 한축 정도 걸고 크지 않은 소경(小景)이나 화조(花鳥)가 알맞다. 서가엔 잡서를 꽂지 말고 책을 높게 쌓아 올려도 속기(俗氣)가 난다"고 인테리어 지침을 내린다. 화려한 조각이나 현란한 금속장식을 피하고 자연적인 무늬목으로 '고졸(古拙)'함을 살리라고 권하고 있다. 그렇다. 조선조 지식인의 생활 품격은 고졸함으로 요약할 수 있다. 단순하면서도 품격있는 자세, 이것이 조선조 엘리트의 가치관이고 생활의 품위임을 조선 목가구에서 볼 수 있다.

조선조 선비 방에서 느끼는 또하나의 특징은 동선(動線)이 매우 짧다는 점이다. 사랑방은 선비의 침실이고 집무실이며 서재다. 관직을 갖지 않는 한, 선비의 하루는 여기서 시작되고 여기서 끝난다. 선비가 벼슬을 얻어 사대부가 되었다 해도 등청(登廳)과 사랑방 생활은 그대로 계속된다. 동선은 길어졌지만 고졸한 품격은 여전히 사대부의 미덕으로 존중된다. 심플 라이프 ―. 고졸한 품격이 바로 조선조 지식인과 공직자의 덕목임을 이 목가구 전시회는 은연중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다.

그제 장상(張裳)총리서리의 임명동의안이 국회에서 부결됐다. 명망 높은 대학총장의 총리 진입 시도는 이것으로 끝났다. 부결시킨 국회의원 당사자들까지 충격으로 받아들이는 이번 '사건'을 보면서 도덕적 기준의 상한선은 어디까지인가를 다시 생각게 된다. 지금도 우리가 조선조 지식인들처럼 그토록 동선이 짧은 심플 라이프를 살아갈 수 있는가. 티없이 맑은 지식인·공직자를 과연 이 복잡계 저잣거리에서 찾아낼 수 있는가.

산업화시대의 일일생활권을 지나 이젠 정보화시대 한복판에서 몸은 사랑방에 홀로 있지만 세계와 대화를 나누고 세계의 정보를 입수하는 긴 동선의 생활권에 살고 있다. 동선이 짧았던 조선조식 심플 라이프는 이젠 미덕이 될 수 없고 또 그렇게 살 수도 없게 되었다. 그러나 張총리서리의 인준절차를 보면 우리는 아직도 지난 시대 선비의 도덕기준을 요구하는 착각에 살고 있지 않은가.

전쟁의 폐허를 딛고 일어서기 위해 유학을 해야 했고 집 한칸 장만을 위해 수십번 이사를 해야만 했던 것이 우리의 고달픈 지난날이었다. 우리 인구의 20% 이상이 아직도 한해에 집을 옮겨가며 살고 있다. 때로는 주민등록을 옮기면서 아파트 당첨을 노렸고 이사를 통한 재산증식이 불문율처럼 생활화되었다. 이제 살 만하게 되니 지난 그 족적이 족쇄가 되어 도덕성 흠결의 판단기준이 되고 있다. 張총리서리 인준부결은 본인의 책임전가식 불성실한 답변에 상당 부분 책임이 있다고 해도, 앞으로도 이같은 도덕성 검증은 계속될 것이다. 어떤 잣대를 댈 것인가. 어떤 인선을 할 것인가.

티없이 맑은 인사가 없지는 않을 것이다. 대체로 그런 이들은 궂은 일에 발 담그지 않고 복잡하고 엉킨 일에선 손을 뺀다. 복잡한 일이 생기면 위원회를 만들어 떠넘기고 자신은 비켜선다. 소신도 없고 추진력도 없다. 결국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채 그저 청빈만을 내세운 인사들도 많이 보아왔다. 이런 지식인, 이런 공직자를 바라지 않는다면 도덕성 기준을 합리적 상식선으로 낮춰야 한다. 또 그 기준을 체계화해야 한다. 공직사회나 기업 또는 대학에서 도덕의 기준을 세우고 준칙을 만들어가야 한다.

이제 살 만큼 되었으니 불법과 합법의 기준에 따라 도덕성을 심판하는 이 시대에 맞는 심플 라이프의 모델과 기준을 세워가야 한다. 그저 한사람의 도덕성에 흠집을 남긴 채 우리 사회의 도덕성을 드높였다고 위선적 자부심을 가질 게 아니다. 실현 가능한 도덕 모델을 세워 우리시대에 맞는 새로운 형태의 심플 라이프, 고졸함의 멋을 만들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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