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항속 붕어論'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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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임직원 중에 많은 사람이 죄를 죄라고 생각하지 않고 있다.""우리의 행동은 '어항 속 붕어'처럼 바로 드러나게 마련이므로 거짓 보고 등의 관행을 고쳐야 한다."

김정태(사진)국민은행장이 1일 오전 월 한차례 열리는 조회에서 그릇된 관행을 답습하는 직원들의 행태를 통렬하게 꾸짖었다. 전국 1천3백여 점포의 2만 임직원을 대상으로 생방송된 이날 조회에서 金행장은 윤리·도덕의 재무장을 거듭 강조했다.

국민은행의 치부로 비칠 수 있는 그릇된 여·수신 관행 사례도 소개했다. 그는 "월말에 대출 실적을 부풀리기 위해 다음달 기표(記票) 내용을 전달로 앞당기는 관행이 남아있고, 캥거루 통장 같은 예금 유치 캠페인 때는 주변 사람들을 허수로 등록해 은행 비용만 불필요하게 부담시키기도 했다"고 꼬집었다.

최근 '뱅커(banker)지'가 국민은행을 자기자본 기준으로 세계 68위로 평가했지만 우리의 의식은 아직도 그 수준에 못 따라간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는 "청렴계약제·내부고발자 제도 등 도덕·윤리경영을 위한 많은 제도가 마련됐으나 아직도 구석기시대에나 가질 만한 사고를 하는 경우가 있다"며 "선배들의 구태의연한 관행을 젊은 직원들이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그대로 따라하기도 한다"고 질책했다. 30여분간 계속된 조회에서 金행장은 "청교도 정신으로 똘똘 뭉쳐 출발한 미국 자본주의조차도 최근 분식회계 등으로 흔들리고 있는 만큼 우리는 더욱 스스로를 다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발언에 대해 국민은행 내부는 물론 다른 은행에서도 발언 배경에 귀를 쫑긋 세웠다. 이 은행의 한 임원은 "3천억원의 충당금을 추가로 쌓으면서 상반기 당기순익이 예상보다 줄었다"면서 "하나은행의 서울은행 합병 노력 등 국내 금융회사들이 본격적인 생존경쟁 시대로 돌입하는 가운데 직원들의 이완된 분위기를 다잡으려는 뜻이 담긴 것 같다"고 의미를 달았다.

다른 시중은행 관계자는 "합병으로 몸집을 불린 국민은행이 전산통합(9월 23일)을 앞두고 하반기부터 본격적인 시장 공략에 나서기 전에 내부를 단속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고 평가했다.

장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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