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서울시장 취임 후 한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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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이명박 서울시장(사진)은 31일 취임 한달을 맞아 기자간담회를 갖고 "그동안 악재가 꼬리를 물어 어려운 시간을 보냈다"며 "앞으로 시정을 펼치는 데 좋은 교훈으로 삼겠다"고 말했다.

지난 한달 동안 시장의 업무수행은 외형적으론 과(過)가 두드러졌지만 공(功)도 적지 않다.

이 가운데 높게 평가되는 대목은 내부 발탁을 원칙으로 한 합리적인 인사. 정무·별정직이나 개방직을 제외하곤 출신지역을 가리지 않고 능력과 서열 중심으로 인사를 단행했다. 지난달 25일 터진 '살생부' 파문이 곧 사그라진 것도 이 때문이다. 전임시장 측근등 인사 불이익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 인물들의 상당수가 시장이 취임한 후 오히려 승진한 것이다.

당초 우려해온 '불도저식 밀어붙이기 행정'도 지금까지는 기우에 그치고 있다. 시장은 현장을 꼼꼼히 둘러본 뒤 다양한 위원회를 구성해 현안에 접근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청계천 복원의 경우 ▶의견을 수렴하는 시민위원회▶실무를 맡는 추진본부▶종합대책을 연구하는 지원연구단 등 3개의 조직을 발족시켰다.'시청 앞 광장 조성 추진 위원회'나 앞으로 4년 간 시정방향을 정할 '21세기 서울기획위원회'도 마찬가지다.

관료적인 서울시 분위기도 서서히 바뀌고 있다. 형식적 회의는 사라지고 자유토론식으로 변하고 있다.

하지만 서울시는 시장의 돌출행동과 정책혼선으로 지난 한달간 적잖이 허우적거렸다. 시장은 히딩크 감독과 아들·사위의 사진촬영에 이어 태풍이 북상하는 중에 부인의 동문회 수련회에서 강연을 했다가 구설수에 휘말렸다.

'시장 따로,실무진 따로'의 혼선이 빚어진 대표적인 경우는 교통분야. 실무과장은 "동대문 시장과 아셈빌딩 주변을 교통혼잡특별구역으로 지정하고 토요일 남산터널 통행료 징수시간을 연장하겠다"고 밝혔지만 일주일 뒤 시장은 "주5일 근무에 따라 토요일 통행료 징수를 면제할 방침"이라고 뒤집었다.

시장은 또 "(9월로 예정됐던)지하철 요금인상도 내년으로 미루겠다"고 덧붙였고 교통혼잡구역의 추가지정은 없던 일이 됐다.

서울시는 이에 대해 "실무진이 결재도 받지 않은 설익은 정책을 내놓았기 때문"이라고 해명했으나 시의 고위 관계자는 "8·8보궐선거와 연말 대선을 앞두고 시민에게 불편을 끼치는 정책은 삼가달라는 한나라당의 요청이 있었다"고 귀띔했다.

31일에는 덕수궁 옆 미국 대사관 아파트 건축에 대해 그동안 반대입장을 지켜온 시장은 "법대로 하겠다"고 표현해 시민단체들의 반발을 샀다.

이철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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