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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프트 파워 소프트 코리아] 1. 일제 때 한국서 태어난 일본인 다카무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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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 일제시대 한국에서 태어난 일본인 다카무라가 '겨울연가' 촬영지 남이섬을 찾아 드라마와 똑같은 배경을 담은 수예작품을 들고 있다.오종택 기자

드라마 '겨울연가'에 푹 빠져 있는 일본의 수예(手藝)작가 다카무라 다치야나(72.여). '겨울연가'는 그에게 '소녀'를 되찾아 주었다.

" '겨울연가'를 통해 '기억(記憶)의 선물'을 받았습니다. 이 드라마가 일본에서 방영되지 않았더라면 고향인 한국을 잊은 채로 제 인생은 끝났을 겁니다."

다카무라가 태어난 곳은 강원도 고성. 한반도가 일제 식민지였던 시절 은행원으로 한국에 건너온 아버지가 전근갈 때마다 온 가족이 전국 각지로 이사를 다녔다. 열두살 때인 1945년 북한 이천(伊川.현재의 평양 외곽지역)에서 종전을 맞았고, 천신만고 끝에 38선을 넘어 일본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철수하는 일본군 트럭을 간신히 얻어 타고 남쪽으로 달아나던 도중 38선 인근에서 총격을 받았어요. 내 옆에 있던 사람은 즉사했지요. 총알이 조금만 옆으로 지나갔더라면 저는 38선 부근 어딘가에 묻혔을 겁니다."

그에게 태어나서 일본에 돌아가기까지의 12년간은 잊어버리고 싶은 세월이었다. 한반도가 소중한 추억의 장소로 되살아난 것은 2003년 4월 NHK가 방영한 '겨울연가' 덕분이었다. 첫회를 봤을 때 느꼈던 감동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드라마 내용은 물론이고, 배우와 배경.음악이 멋지게 조화를 이룬 작품이었습니다. 마약에 중독된 것처럼 일절 다른 방송은 보지 않았어요. 녹화한 '겨울연가' 비디오만 반복해서 봤죠. 잠들 때도 드라마 주제가 CD를 들을 정도였답니다."

특히 드라마 배경으로 나오는 강원도 땅은 잊었던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사무치게 했다. 자녀들에게 "사실 나는 한국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냈단다"라고 처음 고백한 것도 이때였다. 급기야 2003년 10월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겨울연가' 로케이션 장소 단체여행에 참가한 것이다.

"무려 58년 만이었어요. 내가 태어난 땅에 발을 디디자 나도 모르게 울컥 눈물이 나더군요."

다카무라는 부모 사진을 손에 꼭 쥔 채 '겨울연가' 촬영지들을 다니며 추억 더듬기에 열중했다. '조선인' 친구들과 잠자리채로 메뚜기와 나비를 잡던 일부터 새들이 지저귀던 아침 등굣길까지 소녀 시절의 온갖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다카무라는 '남은 생을 일본.한국의 우호와 교류 활성화를 위해 바치고 싶다'는 결심까지 하게 됐다. '겨울연가 수예작품전'도 그래서 탄생했다.

그는 NHK의 양해를 얻어 '겨울연가'의 주요 장면을 수십점의 작품으로 만들어 한국.일본을 오가며 전시하고 있다. 지난해엔 일본 도쿄의 긴자 갤러리, 미쓰코시 백화점, 주한 일본대사관 에서 세차례 전시회를 열었다. 오는 5월에는 미국 뉴욕에서도 전시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지난 연말 한국을 다섯번째 방문한 다카무라는 배용준이 속해 있는 기획사 사무실을 찾아 자신의 겨울연가 수예작품 12점을 증정했다. 그는 "욘사마가 드라마에서 보여 준 상대방에 대한 따뜻한 배려가 평화와 공존의 첫걸음이란 말을 꼭 전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사진=오종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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