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충격 "이제 누가 총리하겠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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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앞으로 누가 총리를 한다고 나서겠나."

장상(張裳)국무총리서리에 대한 국회 임명동의안이 부결된 31일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한숨을 쉬었다.

당장 새 총리감을 구해야 하지만 상처만 입고 낙마하는 꼴 사나운 모습을 누군들 감당할 수 있겠느냐는 얘기다. 대통령이 자신이 창당한 민주당의 표조차 보장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번 부결됐으니 더 좋은 카드를 빼들어야 하는데 그런 인물을 7개월도 안 남은 임기에 어떻게 데려올 것이냐 하는 점도 걱정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총리를 공석으로 남겨두자는 얘기까지 나왔다.

임명동의안 표결 결과가 발표되자 박지원(朴智元)청와대 비서실장은 즉각 관저에서 휴가 중인 김대중(金大中)대통령에게 보고했다. 두시간쯤 있다 張총리서리의 사직원도 金대통령에게 전달됐다.

金대통령은 "참으로 좋은 여성 지도자이자, 능력과 식견을 가진 張총리서리의 인준이 국회에서 통과되지 않은 데 대해 매우 애석하다"고 말했다고 박선숙(朴仙淑)대변인이 전했다.

金대통령은 이어 "특히 여성의 사회진출이 침체된 한국의 사회분위기에서, 국제적으로도 21세기를 맞아 張총리서리의 임명이 여성의 사회진출을 확대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주시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결과가 나온 데 대해 애석함을 금할 수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청와대는 당혹감과 충격으로 어수선했다. 朴실장이 주재한 긴급 수석회의에선 당분간 '총리 직무대행체제'로 가는 문제를 논의했다. 국무위원 1순위인 전윤철(田允喆)경제부총리를 총리직무대행으로 임명하는 문제였다.

새 총리감을 구하더라도 대선 기세싸움에 들어간 국회가 또 한번 총리인준을 거부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나온 고육지책이었다. 하지만 정부조직법 제22조는 총리직무대행의 임명조건을 '총리가 사고로 인하여 직무를 수행할 수 없는 경우'로 한정하고 있어 결국 이 아이디어는 배제됐다. 정치적 논란은 있지만 '총리서리'를 새로 지명해 국회동의를 받는 정면돌파가 불가피하다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다른 일각에선 張총리서리를 지명할 때 너무 서두른 나머지 관계기관 등에 의한 사전검증을 소홀히 했다는 탄식도 흘러나왔다.

더 큰 걱정은 金대통령의 국정 장악력이 소진돼 임기말 국정 마무리에 차질이 빚어지지 않겠느냐 하는 점이었다. 1999년 한나라당 서상목(徐相穆)의원의 체포동의안이 부결될 때만 해도 정권 초기의 긴장감으로 국정을 장악할 수 있었다.

지금은 민주당 의원들의 반란표를 색출할 의욕도 능력도 없는 처지다. 한나라당 이회창(會昌)대통령후보의 사전동의를 받지 않으면 이젠 총리도 임명할 수 없는 지경이 됐다는 자조도 없지 않다. 부분적으로 이회창 후보와 한나라당의 오만이 극적으로 부각된 만큼 이를 반전(反轉)의 기회로 삼을 수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金대통령은 2일까지 예정된 휴가를 취소했다. 1일 신임총리가 주재할 예정이었던 국무회의도 金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직접 주재하기로 했다.

최상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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