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뚜껑 열리자 3당 모두 놀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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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장상(張裳)총리서리가 31일 끝내 국회 인준의 문턱에서 좌초했다. 한나라당은 물론 민주당·자민련 모두 자유투표키로 하면서 이런 결과가 발생했다. 각당 모두 투표 결과에 놀라면서 향후 정국에 미칠 파장을 예측하느라 부산했다.

◇한나라당·민주당의 책임 떠넘기기=박관용(朴寬用)국회의장이 임명동의안 투표 결과를 발표하면서 "재적의원 2백42표 중 가(可) 1백표"라고 말하는 순간 본회의장은 술렁댔다.

"부(否) 1백42표"라는 말이 이어지자 술렁거림은 소란으로 바뀌었다. 일부 한나라당 의원은 박수를 쳤지만 다수는 깜짝 놀라는 표정이었다. 이구동성으로 "자유투표가 빚은 이변"이라고 했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즉각 긴급회의를 소집했다.

한나라당은 서청원(徐淸源)대표가 주재한 최고위원회의에서 "안타깝지만 민의가 반영된 결과"라고 의견을 모았다.

박희태(朴熺太)최고위원은 "청문회가 TV로 전국민에게 생중계된 게 이런 결과를 초래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자리를 비웠던 이회창(會昌)대통령후보는 전화로 결과를 보고받곤 "허…참…"이라며 놀라움을 표시했다고 한다.

한나라당은 그러면서 "민주당에서도 상당한 반대표가 나왔을 것"이라는 분석을 내놨다.

徐대표는 "큰 표차로 부결된 것은 민주당 내 정파 대립의 산물"이라며 "사실 우린 국정 공백을 우려해 20~30명 정도는 찬성표를 던졌다"고 말했다.

하순봉(河舜鳳)최고위원도 "상당수 당 지도부가 가표를 던졌다"며 "근소하게나마 여성 총리가 탄생할 줄 알았다"고 했다. 민주당 지도부는 더욱 당황했다. 그러나 그 책임을 한나라당 쪽으로 떠넘겼다.

당 지도부 중에서 본회의장을 가장 먼저 나온 박상천(朴相千)최고위원은 "임명안을 통과시켜 주겠다고 공공연하게 얘기했던 한나라당 지도부의 말이 거짓말로 드러났다"고 말했다.

정균환(鄭均桓)원내총무는 "한나라당이 형식만 자유투표지, 사실상의 당론 투표로 조직적으로 부결시켰다"며 "한나라당이 뒤통수를 쳤다"고 말했다.

그는 "張총리서리보다 개인적 흠결이 많은 이회창 후보가 더 어렵게 되는 것 아니냐"고 꼬집기도 했다.

강성구(姜成求)의원은 "대통령…대통령이 이제 어떻게 하느냐. 임기를 몇달 안 남겨놓고 완전히 망가졌다"고 안타까워했다.

◇"우린 자유투표,민주당에 달렸다"=한나라당은 이날 일찌감치 자유투표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한나라당 의원의 다수가 반대해도 민주당이 밀어붙일 경우 통과엔 문제가 없을 것으로 전망했다.

남경필(南景弼)대변인은 자체 여론조사 결과를 전하며 "59.9%가 총리직 수행에 문제가 있다고 했고, 통과돼선 안된다는 게 44.7%에 달했다"며 "대체로 자유투표가 대세"라고 말했다.

최고위원회의에서는 우스개처럼 "당직자들이라도 확실히 찬성표를 던지자"는 말이 나왔다고 한다.

이런 분위기는 오후 의총에도 이어졌다. 張총리서리에 대해 대부분 부정적이었다. "달변인데 결과적으론 '우먼 DJ(김대중 대통령)'"(朴承國), "웬만하면 해주겠다고 했는데 청문회를 보면서 생각이 바뀌었다"(朴源弘),"찬성한다면 유권자들이 '그럼 투기해도 된다는 말이냐'라고 물을 것"(在哲)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그러나 김기춘(金淇春)·홍준표(洪準杓)·김부겸(金富謙)의원 등은 "인준하지 않을 경우 우리가 뒤집어쓸 수 있다"고 지적했다.

◇민주당 내부의 반대=당초 민주당은 '찬성 표결'을 당론으로 정하려 했다. "비록 탈당한 대통령이지만 의리를 저버릴 수 없다. 대통령을 한번 봐주자"(鄭大哲 최고위원)는 입장이 지배적이었다.

그런데 본회의 직전 열린 의원총회에서 일부 초선 의원이 이런 분위기에 제동을 걸었고 결국은 '권고적 당론을 전제로 한 자유투표'란 어정쩡한 입장으로 정리가 됐다.일사불란한 당론 투표도, 그렇다고 완전한 자유투표도 아니었다.

의총에선 "식구 수가 10명이 채 안되는 집안에서 벌어진 일(위장전입 의혹)도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인구 4천7백만명이 넘는 국가의 일을 할 수 있나"(鄭範九), "국적 포기·병역 기피와 연루된 사람은 대통령이나 총리가 될 수 없다는 원칙을 우리 당이 세워야 한다"(宋永吉)는 강경 발언이 계속 쏟아졌다.

이에 청문특위 위원장인 정대철 최고위원은 "(張서리가)60점은 되니 통과시켜 주자"고 했고, 한화갑(韓和甲)대표도 "최초의 여성 총리가 인준될 수 있도록 협조해 달라"고 의원들을 설득했지만 효과가 없었다.

고정애·서승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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