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치병 정복 꿈에 밤샘 예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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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50면

하늘을 마음대로 날아다니던 영화 수퍼맨의 주연배우 크리스토퍼 리브는 이제 휠체어에서조차 자유롭지 못한 장애인이다. 현대 의학으로는 아직 치료할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리브가 희망을 걸고 있는 분야가 있다. 생명공학 중 줄기세포 연구다. 줄기세포는 신체를 이루고 있는 2백여가지 세포로 자랄 수 있는 만능세포. 뇌신경세포·심장근육세포·혈액세포·뼈세포·허파꽈리 세포 등 이론상으론 어느 것이나 다시 만들 수 있다. 리브는 줄기세포로 자신의 척추신경을 재생해 옛날처럼 하늘을 날 수 있게 되기를 학수고대하고 있다.

리브 같은 장애인도 정상인으로 되돌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는 인간 줄기세포 연구는 미래 생명공학의 꽃으로 통한다. 선진 각국은 줄기세포 연구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치열한 연구 경쟁을 펼치고 있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서울대 의대 산부인과 문신용(54)교수, 마리아불임병원 기초의학연구소 박세필(42)박사, 포천중문의대 세포유전자치료연구소 정형민(38)교수. 이들 세 과학자는 한국의 줄기세포 연구를 선도하고 있다.

연구하는 곳이나 세대는 달라도 인류의 불치병을 줄기세포로 다스릴 수 있는 기술 개발에 지금도 밤을 새우고 있다. 현미경 앞에서 육안으로 보이지 않는 난자·난소·정자·수정란 등과 씨름을 하고 있는 것이다.

◇문신용 교수=1984년 한국에서 처음으로 시험관 아기 시술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그를 거쳐 잉태한 시험관 아기만 해도 수백명. 불임부부에게 생명의 씨앗을 선물했던 문교수는 이제 맞춤의학에 도전하고 있다.

생명 잉태의 시작인 인간 배아의 성장과 체외배양 등의 분야에서 30여년간 연구해온 노하우를 바탕으로 줄기세포에 연구력을 모으고 있다.

지난 6월에는 국책과제로 추진 중인 세포응용연구사업단장에 뽑혔다. 우리나라의 줄기세포 연구를 진두지휘하는 자리다. 앞으로 10년간 연간 1백억원씩 1천여억원을 쏟아붓는 초대형 연구과제다.

문교수는 "우리나라에도 우수한 생명공학자들이 많다. 이들에게 연구비를 집중 지원하면 10년 뒤에는 한국이 줄기세포 강국이 되어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올해는 20여개의 줄기세포 관련 연구과제를 공모할 계획이다.

그는 앞으로 세포응용 연구자들을 하나의 네트워크로 묶어 우리나라의 연구력을 높이고 시너지 효과를 낼 계획이라고 말한다. 인적·물적 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가 선진국과 경쟁하기 위해서는 가장 절실한 문제 중 하나라는 것이다.

◇박세필 박사=세계적인 연구 업적으로 몇년째 화제를 몰고 다니는 '스타 과학자'다. 2000년 8월 불임치료를 하고 남겨둔 냉동 배아를 이용해 줄기세포를 키우는 데 성공했다.

이 기술은 1백8개국에 특허 출원됐다. 이를 바탕으로 인간 줄기세포에서 심장근육세포·신경세포·근육세포도 분화시켰다. 이들 세포를 치료용으로 쓸만큼 많이 키우면 손상된 뇌나 심장 등을 복원할 수 있다.

그가 분리해 낸 줄기세포 세 종류는 지난 1월 미국 국립보건원(NIH)에 등록되기도 했다.그 당시 NIH에 전세계에서 등록한 줄기세포는 60여종.

박박사는 "등록한 줄기세포는 일정한 연구능력을 갖춘 연구기관에 무상으로 분양할 계획"이라며 "국내 연구능력이 높아져야 국제사회에서도 발언권이 세진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6월 쥐의 난자에서 추출한 배아줄기세포를 만들어 대한가축번식학회에서 최우수 연구논문상을 받기도 했다. 수정란이나 체세포복제가 아닌 단성생식에서도 줄기세포를 배양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그는 요즘 자신이 분화시킨 줄기세포로 동물 질병치료 실험에 몰두하고 있다.

◇정형민 교수=왕성한 연구활동을 하고 있는 신진 과학자. 시험관아기 시술을 위한 난자배양과 동결, 줄기세포 연구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기술개발에 뛰어난 업적을 인정받고 있다.

정교수는 미성숙 난자를 채취해 키워 사용하는 시험관아기 시술법을 보편화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또 동결에 아주 약한 난자를 냉동보관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섭씨 영하 1백96도에서도 난자가 얼지 않고 젤과 같은 상태로 보관되도록 하는 특수한 동결법이다. 이를 이용해 시험한 결과 시험관 아기 성공률이 30%대에서 43%로 높아졌다.

현재 그가 소장직을 맡고 있는 세포유전자치료연구소는 두 종류의 인간줄기세포를 NIH에 등록해 두고 있다.

정교수는 "줄기세포를 이용해 파킨슨병이나 뇌졸중·간경화 등의 질환 치료법을 연구 중"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말 쥐의 뇌에 배아줄기세포를 이식해 신경세포가 생기도록 하는 데 성공하기도 했다.

박방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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