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언제든지 좋다” 박근혜 “만나자면 만날 것”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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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해 9월 16일 청와대에서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유럽 지역을 다녀온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로부터 방문 결과를 보고받고 있다. [뉴시스]

17일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회동 얘기가 나왔다. 안상수 신임 대표가 이날 오전 청와대에서 이 대통령과 만나 박 전 대표와의 회동 의사를 타진했다. 이 대통령이 “언제든지 좋다. 여러 국정 현안에 관해서도 얘기를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고 안 대표가 공개했다. 이 대통령은 또 “실무진에서 조정해서 박 전 대표 측과 (회동과 관련한) 교섭을 하겠다”며 “재·보궐 선거 전이든, 후든 적절하게 서로 조율이 되면 회동해서 협력하는 데 대해 기탄없이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안 대표는 청와대 조찬회동이 끝난 후 당으로 와 기자간담회를 열고 이런 내용을 전했다. “어제(16일) 시내 모처에서 취임 인사차 박 전 대표를 만났다. 1시간가량 독대한 자리에서 박 전 대표에게 회동 의향을 물었다. 박 전 대표도 ‘대통령과의 회동은 거절한 적이 없다. 만날 수 있다’고 했다.”

안 대표는 또 “만남이 화기애애했다. 정권 재창출이 우리의 기본적인 사명이라는 데 뜻을 같이 했다”는 말도 했다. 일각에서 나오는 박근혜 총리론에 대해선 박 전 대표가 “(총리직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한 내용도 함께 전했다.

이 대통령과 박 전 대표 측이 원론적이긴 하나 일단 회동에 동의한 것은 6·2 지방선거 패배 이후 여권 내에서 터져 나온 소통과 통합 요구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두 사람은 지난해 9월 청와대에서 회동한 이후 관계가 냉각됐고 이후 여권은 세종시 수정안을 놓고 분열했다. 청와대 개편이 마무리되고 재·보선을 전후한 시점에 개각이 예정돼 있는 만큼 두 사람 간 회동이 성사될 경우 향후 국정운영과 정국 변화에 분수령이 될 수도 있다.

친박계 의원들은 이번 회동 제의에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 이 대통령과 박 전 대표의 회동이 더욱 큰 갈등을 잉태하는 것으로 끝난 과거의 사례들 때문이다. 지난해 회동 때도 “비공개로 하자”는 약속에도 불구하고 뒤늦게 언론에 알려지는 바람에 박 전 대표 측의 반발을 샀다. 그래서 “만나고 나면 간극이 더 벌어진다. 차라리 안 만나는 게 낫다”는 얘기가 나오기도 했다.

친박에서 유일하게 지도부에 입성한 서병수 최고위원은 이날 기자와의 통화에서 “과거에도 만났지만 결과가 신통치 않았다. 만남의 의미가 있어야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안 대표가 정치적 액션으로 만남을 추진하는 듯하지만 그냥 만나서는 의미가 없다”며 “동반자 관계를 만든다거나 하는 식으로 사전에 충분한 준비가 필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정현 의원도 “박 전 대표로부터 확인한 내용은 ‘대통령이 만나자고 연락을 해오면 언제든 만났었고, 안 만난 적이 없다. 대통령이 만나자고 하면 만나봐야 하는 거 아니냐’는 두 가지였다”고 말했다.

반면 안 대표 등 주류 측은 기대를 걸고 있는 눈치다. 안 대표는 “(회동이 성사된다면) 너무 큰 의미를 두는 것보다 앞으로 자주 만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봐야 한다. 의미에 대해선 사전에 조율을 거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회동 시기에 대해서는 “빠르면 7·28 재·보선 이전이고, 늦으면 선거 이후 바로 성사될 수 있지 않겠느냐”고 전망했다.

안 대표의 회동 제의가 7·28 재·보선을 염두에 둔 선거전략에서 나온 것이란 얘기도 나왔다. 물론 안 대표는 “(선거 전에 만나도 박 전 대표가) 선거 지원은 안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6·2 지방선거에서 참패하고 재·보선 전망마저 어두운 한나라당으로선 박 전 대표의 지원이 아쉬운 입장이다. 이재오 전 국민권익위원장이 출마한 서울 은평을도 마찬가지다. 이 전 위원장의 한 측근은 “박 전 대표가 여러 차례 ‘선거는 당 지도부가 치르는 것’이라고 강조한 만큼 (지원에 나설)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본다”면서도 “그래도 만에 하나 결단을 하고 행보한다면 천군만마를 얻는 것처럼 감사한 일”이라고 말했다. 만약 다음 주 중 청와대 회동이 성사되고 박 전 대표의 지원유세가 이뤄진다면 이번 재·보선의 최대 승부처로 꼽히는 은평을에서 승산이 있다는 판단이다

친박계 일각에선 안 대표가 회동 카드를 들고 나온 배경에 주목한다. 안 대표 체제를 공고히 하기 위한 제스처 아니냐는 것이다. 그는 이날 기자간담회를 자청, “제가 주선을 해서 성사됐다”고 거듭 강조했다. 안 대표가 불을 지피고 나선 개헌이나 ‘박근혜 총리론’이 현실성 없다는 반응을 얻은 직후 이처럼 발 빠른 행보를 보인 건 전당대회 후유증을 조기 수습하기 위한 전략이란 시각이다. 당 대표는 됐지만 안 대표가 경선 과정에서 얻은 상처는 작지 않다. 병역 기피 논란에 이어 1등을 놓고 첨예한 공방을 벌인 홍준표 최고위원과의 앙금도 여전하다.

실제로 홍 최고위원의 ‘몽니’는 경선 이후에도 계속되고 있다. 그는 전당대회 다음 날인 15일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민심에 역행하는 전당대회가 돼 유감이다. 바람은 돈과 조직을 이기지 못한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고 포문을 열었다. “걱정을 좀 해야 할 거다. 옛날 야당할 때 하던 비주류를 지금부터 또 해보겠다”고도 했다.
그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비주류 선언’에 대해 “한나라당은 잘못을 눈감아주는 경향이 있는데, 파헤칠 건 파헤치고 바로잡을 건 바로잡는 의미로 비주류를 하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잘못된 허물을 덮어주는 건 화합이 아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런 상황에서 안 대표가 이 대통령-박 전 대표의 회동을 성사시킨다면 후유증을 털어내고 정치력을 평가받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정두언 “대통령 옆에서 호가호위 없어야”
경선 과정에서 불거진 권력 사유화, 국정 농단 논란도 계속되고 있다. 그 중심에 섰던 정두언 최고위원은 “대통령 주변에서 충성을 한다면서 호가호위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애인고용촉진공단 양경자 이사장의 사퇴도 거론했다. 관례적으로 장애인에게 주어지는 이사장직을 비장애인에게 맡긴 게 문제로 제기됐다. 양 이사장은 이 대통령과는 서울시장 선거부터 인연을 맺은 뒤 대선 때는 후보 특보까지 지냈다.

정 최고위원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양 이사장) 본인이 물러나든지 해야지, 이게 정권 재창출을 하겠다는 집단이 할 짓이 아니다”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안 대표의 취임 직후 행보에 대해서도 “제일 중요한 게 뭐냐. 서민과 민생을 얘기해야지 지금 개헌이 나오는 건 대단히 잘못된 거다. 국민들은 힘들어 죽겠는데 무슨 개헌이냐 ”고 쓴소리를 했다.

한 초선 의원은 “안 대표와 홍 최고위원이 대선후보 경선 이후 이 대통령과 박 전 대표처럼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넌 거 아니냐”고 말했다. 그러면서 “표면적으론 5명 중 4명이 범친이계지만 다 같은 친이계가 아닌 점도 변수”라고 덧붙였다. 친이 주류와 친박, 개혁소장파, 중립 등 제각각 다른 입장을 표명하는 만큼 한나라당 지도부의 팽팽한 신경전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이란 시각이 많다.

홍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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