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보균의 세상 탐사] MB정권 청와대 참모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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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호 02면

청와대 참모진이 개편됐다. 다음 달이면 이명박(MB) 정권의 후반기다. 이 시점에서 비서진에 필요한 덕목· 보좌자세는 무엇인가. 역대 청와대 간판들에게 물어보았다. 그들의 경험 넘치는 답변은 이렇다.

“대통령과 참모들은 정치적 운명과 가치관을 함께해야 한다. 수석들은 대통령 허물까지 뒤집어써야 한다. 이제까지 MB 청와대 참모들은 책임과는 거리 먼 평론가 같았다. 지방선거 패배를 놓고도 비평가처럼 접근했다.”(이원종·김영삼 정권 정무수석)
“임기 후반에 갈수록 적당히 승진해 보따리 싸려는 분위기가 청와대에 깔린다. 대통령을 살신성인으로 모시려는 사람이 줄어든다. 운명공동체 의식, 내각과의 정책 소통과 장악력, 민심의 전달 기능이 더욱 중요하다.”(박지원·김대중 정권 비서실장)
“대통령이 국정 모두를 챙길 수 없다. 참모들의 주인의식이 긴요하다. 평소에 대통령 의중을 헤아려 필요한 사안을 처리해야 한다. 대통령과 민심의 간격이 점차 벌어지기 마련이다. 참모들이 그것을 해소해야 한다.”(문재인·노무현 정권 비서실장)
5공 초기 키 플레이어(정무수석)였던 허화평씨는 “후반기일수록 국정의 선택과 집중이 중요하다. MB 참모들은 업무의 핵심 포인트를 낚아채는 역량이 부족했다. 시급히 보완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이들이 꼽은 공통적인 덕목은 대통령과 운명공동체, 국정 주체의식, 가치와 노선의 촘촘한 공유, 정책 장악력, 민심 풍향의 관측력, 소통 역량이다. 바뀐 참모진은 임태희 대통령실장과 백용호(정책실장)·정진석(정무수석)·홍상표(홍보수석)·김두우(기획관리실장) 등이다. 새 참모진에 그 덕목의 잣대를 대면 점수는 얼마일까.

전반기 MB 정권의 이미지는 강렬함과 거리가 멀었다. 청와대에 걸출한 책사(策士)도 없었고 전략적 악역(惡役)도 등장하지 않았다. 국정 운영의 비장미(悲壯美)도 권력관리의 치열함도 떨어졌다. 그런데도 야당과 좌파 쪽에선 독선과 오만으로 비난한다. 4대 강 사업의 독주 논란, 소통 부족도 그 요인이다. 가장 큰 이유는 이미지 선전 전선에서 드러난 청와대의 무기력, 전략 빈곤 탓이다.

MB 정권의 국정노선 깃발은 중도 실용이다. 그 깃발의 매력과 인상 효과는 시원치 않았다. 실용은 좌우, 중도 누구나 내세운다. 중도는 집권 초 국민통합의 명분으로 쓰인다. 하지만 그 명분이 실질을 보장하지 못한다. 후반기일수록 적과 동지는 선명해진다. 천안함·4대 강으로 우리 사회 이념·비전의 갈등은 거칠어졌다. 그런 속에서 중도는 수세적이다. 지지 세력의 심각한 이탈을 초래한다. 권력 내부가 어수선해지고 기회주의 풍토를 유발한다.

중도 깃발로 모은 여론은 취약하다. 지방선거 전 청와대는 50%에 육박한 MB 지지율을 자랑했다. 서민 중도실용 덕분이라고 했다. 그러나 선거 때 야당 공세에 속절없이 허물어졌다. 충성도 빈약한 대중 지지는 결정적 순간에 무의미해진다. 정권 브랜드와 노선 깃발을 재정비해야 한다. 보스와 참모의 주요 과제다.

MB 정권은 경제 살리기의 열망으로 탄생했다. 거기에 과거 정권 때 상처받은 역사관과 이념을 회복해달라는 염원이 더해졌다. 서민경제의 핵심은 일자리다. 청년 백수 줄이기다. 일자리는 젊은 세대의 좌절과 불안의 근원이다. 그 불만이 선거 때 전쟁·평화의 천안함 논쟁을 통해 분노로 표출됐다. 대한민국 이념·가치의 세련된 복원은 지지 세력의 믿음을 확보한다. 후반기 국정우선 순위를 차지할 과제들이다. 두 사안의 성취가 정권 성공과 직결된다.

이 대통령은 신임 참모들에게 “마지막 직장으로 생각하고 일하라”고 했다. ‘마지막’의 의미는 절실하다. 이원종씨는 “청와대는 참모의 정치적 야심, 장래를 키우는 곳이 아니다”고 강조한다. 임 실장과 참모들은 여기서 승부를 걸어야 한다. 그런 자세가 국정 보좌의 열정과 투지를 생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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