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튼같은 외벽 '동네명물' : 성북동 '백해영 갤러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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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1면

구불텅구불텅한 외벽이 국수 면발 같기도 하고 바람에 날리는 커튼 자락처럼 보이기도 한다. 한 번 보면 잊을 수 없는 담벼락만으로 이 집은 동네 명물이 되었다. 서울 성북동 주택가에 지난 5월 말 문을 연 백해영 갤러리는 단조로운 단독 주택들 사이에서 단연 눈길을 끄는 구경거리로 입소문을 타고 있다.

"가라앉아 있는 마을 분위기에 활력을 주고 싶었습니다. 이 건물이 던지는 시각적 충격으로 주민들을 끌어모으는 구심점 구실이랄까요. 갤러리는 그림을 걸어야 하는 기능 때문에 흔히 벽이 막히고 창문이 없는 민 벽으로 가게 되는데 그 벽이 동네의 미래 발전가능성을 보여주는 역할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궁리했지요."

설계자인 민 켄(Ken) 성진(38)씨는 "도시적 느낌을 주는 앞쪽과 한옥의 별당을 연상시키는 고즈넉한 뒤쪽 공간을 아우른 신선함으로 동네를 대표하는 상징물로 떠올라 만족한다"고 말했다.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활동하고 있는 건축가 민씨는 재미 건축가인 손학식씨 사무실에서 일을 배운 유학파다. 미국 건축가 프랭크. 게리의 건축세계를 좋아하는 그는 게리가 즐겨 쓰는 라인징크를 마감재로 활용해 표정이 풍부한 외관 만들기에 관심이 많다. S자 곡선을 이룬 외벽의 재료가 바로 라인징크로 금속성이면서도 번들거리지 않고 중성적이며 차분한 느낌을 주는 튼튼한 물질이다.

건축주인 백해영(50)씨는 갤러리 제목에 자기 이름 석 자를 내걸 만큼 화랑 일과 아트 컨설팅에 자부심과 책임감을 지녔다. 이 집도 그가 늘 생각해온 '작은 미술관'의 본보기로 지었다."이제 미술은 건축과 함께 가야 하는 종합예술이 돼가고 있어요. 미술관 하면 크고 거창한 대형 건물만 떠올리는데 지금 세계적인 추세는 그게 아니에요. 마을마다 평소 작품을 열심히 모아온 소장가들이 작고 아담하게 짓는 개성 넘치는 미술관이 많이 생기고 있거든요. 그런 일들을 안내하고 상담역을 하는 게 제 꿈입니다."

백해영 갤러리도 대지가 1백 평이 채 안 된다. 1·2층에 20평 짜리 전시실 1개씩이 들어서고 그 뒤로 자료실과 사랑방 같은 만남의 터가 이어진다.'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말이 어울리는 앙증맞은 화랑이다.

고미술의 보고로 이름난 간송 미술관을 비롯해 변종하 미술관과 한창 공사중인 가구박물관 등 언저리 명소들과 어우러져 백해영 갤러리가 성북동에 문화 파장 하나를 일궈내는 참이다. 02-747-7828.

정재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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