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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 권력의 두 얼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먹이사슬의 약육강식 법칙이 우리 사회 일각에서 적용되고 있다. 지금 검찰조사로 조금씩 드러나는 연예계의 비리구조에서 가난한 연예인들의 피와 땀을 먹이사슬의 고리로 삼고 있는 연예권력의 추악한 얼굴을 볼 수 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어제 연예산업 전반에 걸친 불공정 행위에 대해 무더기 제재 조치를 내리고, 시정명령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 검찰고발을 검토할 것을 공표했다. 문제가 된 연예기획사들의 약관은 소속 연예인에게 계약해지시 엄청난 배상금을 물도록 해 사실상 해지가 불가능하게 하거나 연예인의 손해배상 청구권 자체를 배제하기도 하고, 소속 연예인을 본인의 동의 없이 타사에 넘기거나 일방적으로 계약을 해지할 수 있게 돼 있다. 노비문서와 다를 바 없다. 더구나 사사로운 이익보다 업계 전체의 참 이익을 추구해야 할 업계 단체들마저 회원사의 이익에 눈이 어두워 문제해결은커녕 집단이기주의에 앞장섬으로써 연예산업계 전체가 불명예에 빠지도록 한 것은 심히 부끄러운 일이다.

연예권력은 한 손으로는 힘없는 연예인들의 목덜미를 쥐고, 또 한손으로는 방송사 일부 PD들에게 뇌물을 건넨 혐의를 받고 있다. 공정거래위의 발표는 이 뇌물이 기획사의 주머니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이들에게 덜미를 잡힌 연예인들의 피와 땀과 눈물임을 짐작케 한다.

한스밴드 등 일부 연예인이 연예기획사의 횡포를 제기한 지 수년 만에 공정거래위원회가 메스를 들이댄 것은 만시지탄(晩時之歎)이지만 이제라도 연예권력이 가난한 재능꾼들을 상대로 무소불위의 힘을 더 이상 휘두르지 못하도록 제동을 건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연예인들은 대중의 인기를 먹고 산다. 이번 연예계 비리 사건으로 가장 심한 타격을 받은 이는 대중과 직면하고 있는 연예인들이다. 연예기획사들과 관련 업계 단체들이 진실로 거듭나지 않고서는 이들의 자존심과 명예를 회복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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