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료용 배아복제 허용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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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배아복제의 허용 여부를 놓고 논란이 많다. 종교계와 시민단체는 배아도 생명의 씨앗인 만큼 인위적 조작을 해선 안된다고 주장하며 과학기술계는 난치병 환자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연구를 서둘러야 한다고 주장한다. 치료용 배아복제의 허용 여부는 일단 추후 설립될 국가생명윤리 자문위원회의 판단에 맡겨지게 됐다. 판단이 일시 유예된 셈이다.

필자는 배아복제의 허용 여부는 전적으로 과학자보다 시민사회가 결정해야 할 문제라고 본다. 그러나 여기엔 과학적 사실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전제로 한다.

아직도 많은 사람이 '배아복제'하면 자신과 닮은 복제인간을 대리모의 뱃속에서 키웠다가 죽인 후 장기를 꺼내 이식하는 것으로 잘못 알고 있다. 그러나 배아복제는 수정 14일 이전 세포덩어리 단계까지만 키운 뒤 여기에서 난치병 환자의 치료에 필요한 줄기세포를 얻어내는 엄연한 치료행위다.

배아에서 추출한 줄기세포는 치매와 파킨슨병·당뇨병 등 난치병을 해결하기 위한 가장 확실한 대안이다.

예컨대 당뇨병의 경우 지금까지는 뇌사자가 기증한 췌장으로 바꿔 끼워야만 완치가 가능했지만(이 경우에도 거부반응이 문제가 될 수 있다) 앞으론 줄기세포로 만든 췌장세포를 이식해 줌으로써 얼마든지 치료가 가능해진다.

배아줄기 세포를 배양하는 방법은 세가지가 있다. 폐기 처분될 냉동 배아를 녹여 이용하는 법, 인간의 체세포 핵을 핵이 제거된 인간 난자에 이식하는 동종(同種)간 핵치환 기술과 동물 난자에 이식하는 이종(異種)간 핵치환 기술이다.

동종간 핵치환 기술의 경우 유전자가 일치해 거부반응이 거의 없는 완벽한 세포를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이를 위해선 엄청나게 많은 인간의 난자가 필요해 동종간 핵치환 기술은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한 치료다.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수단이 바로 찬반 양론이 격하게 대립하고 있는 이종간 핵치환 기술이다.

가장 큰 반대논리는 반수반인의 탄생이다. 사람도 아닌, 짐승도 아닌 개체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해묵은 고정관념의 산물일 뿐이다.

왜냐하면 이종간 핵치환으로 만들어진 복제배아는 설령 악의적 목적으로 자궁에 이식하더라도 태아로 자라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종간 핵치환에 대한 국내 기술수준은 이미 선진국과 겨뤄 손색이 없다. 그러나 비등하는 반대여론 때문에 허용 여부가 아직까지 불확실한 상태로 남아 있어 안타깝기 그지없다.

며칠 전 정부는 이공계 대학생과 대학원생의 역량을 강화하고 과학기술인의 처우를 개선하며 직업의 안정성을 향상시켜 과학기술자의 사기를 높인다는 국가 과학기술안을 발표했다. 다수의 과학자를 청와대로 초청한다는 소리도 들린다. 그러나 단지 보여주기 위한 겉치레 행정은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할 뿐이다. 진정한 의미의 사기진작은 정부가 배아복제에 대한 국민의 그릇된 오해와 두려움을 풀어주고 법적·제도적으로 공개된 장소에서 떳떳하게 연구하도록 배려하는 것이다.

영국은 이미 체세포 치료용 배아복제 연구를 법으로 허용하고 있다. 미국 역시 폐기 처분될 잉여 냉동 배아의 연구에 적극 나서고 있다. 그렇지만 우리는 아무도 영국과 미국이 우리보다 윤리적으로 뒤떨어졌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빠르게 발전해온 생명공학의 흐름에 발맞춰 난치병 환자의 치료받을 권리를 보호함은 물론 기간산업으로 육성하기 위한 국가 차원의 지원인 것이다.

치료용 배아복제는 허용해야 한다. 이종간 핵치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반대여론으로 1년만 연구가 지체돼도 해마다 수만명의 난치병 환자들이 숨진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그러나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미국 클로네이드사의 인간복제와는 엄연히 구분돼야 한다. 인간복제는 배아를 자궁에 착상시켜 아기로 태어나게 한다는 점에서 윤리적 비난을 모면할 방법이 없다. 법적으로도 금지해야 마땅하다. 기술적으로도 미국 클로네이드사가 추진 중인 인간복제는 불완전해 정상적인 아기로 태어날 가능성이 거의 없다. 치료용 배아복제가 생명을 구하기 위한 의술이라면 인간복제는 돈벌이란 상업적 목적이 바탕에 깔린 무모한 실험에 불과하다. 배아를 둘러싼 옥석은 반드시 가려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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