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극으로 변한 '한여름 밤의 꿈' 얼쑤 ! 셰익스피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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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5면

연극에서도 명물 계절상품이 정착할 기세다. 극단 미추와 예술의전당이 공동 제작하는 '한여름밤의 꿈'이 그 1순위 후보다.

드라마와 음악이 어울리는 뮤지컬 형식의 이 작품은 익히 알려진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동명 희곡을 바탕으로 했다. 그렇다고 원작의 구성과 인물설정 등을 살짝 바꿔 뮤지컬로 분칠한 것은 아니다. 재창작에 가깝게 꾸민 번안극이다.

이 작품은 지난해 이맘 때 초연됐다. 원작의 시점에 들어맞게 '해질무렵'인 오후 8시 예술의전당 야외극장 무대에 올랐다. 자연 속에서 펼쳐지는 몽환적 분위기의 이 작품에 사람들은 갈채를 보냈다. 관객 반응을 실험한 3회 공연에 3천여명이 몰렸다. 회당 1천명이 몰린 셈이다. 그러자 미추와 예술의전당은 "매년 야외극으로 정례화하겠다"며 올해는 공연 횟수를 아홉번(8월 3~11일)으로 늘렸다.

번안 야외극 '한여름 밤의 꿈'의 이야기는 '태백국의 태자와 공주의 결혼식을 사흘 앞둔 어느날'로부터 시작한다. 유화를 두고 알평과 가섭은 사랑 쟁탈전을 벌인다.

여기에 제3의 회방꾼 아령이 등장하면서 이들의 전장(戰場)은 온통 지뢰밭이다. 엎친 데 덮친 격. 숲 속 정령(精靈)들은 '사랑의 묘약'을 잘못 써 이들의 사랑놀이를 더욱 꼬이게 만든다. 유화·알평·가섭·아령은 원작의 헬레나와 디미트리우스·라이센더·허미어와 콘트라스트다.

이처럼 '남의 것'을 마치 '우리 것'인 양 감쪽같이 탈바꿈시킨 재주꾼은 극작가 박수진이다.

1998년 '춘궁기'로 삼성문학상(희곡부문)을 탄 이 신예는 "이 연극에서 '사랑한다'는 식의 노골적인 셰익스피어의 사랑 표현법 대신 '저 헝클어진 머리카락 좀 봐'하고 걱정해 주는 우리식 표현법을 택했다"고 말했다. 춤과 노래도, 신명의 마당극도 다 우리 전통을 응용했다. 이것은 연출 신용수의 몫이다. "우리 옷 입고 우리 몸짓으로 우리 말을 하는 셰익스피어에 다가서고 싶었다."

우리 공연계의 대표적인 계절상품은 겨울시즌의 발레 '호두까기 인형'이다. 수년 전부터 크리스마스 전후 직업발레단의 쌍벽인 국립발레단과 유니버설발레단은 이 작품으로 실력대결을 펼치며 한해를 정리하고 있다.

작품의 내용과 분위기가 계절감과 딱 맞아 국내 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에서 이 작품으로 한 해를 마감하는 게 전통처럼 돼있다.

'한여름 밤의 꿈'은 이에 못지않은 세계적인 여름 계절상품이다. 원작의 고향 영국 런던 리젠트 파크의 오픈 시어터 공연은 유명하다. 이를 모델로 한 미추·예술의전당의 작품도 한국의 명물이 되는 게 꿈이다. 윤문식·정태화·이기봉·전일범·서이숙 출연. 02-780-6400.

정재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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