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王 장인 구니노미야 대장 살해 기도 조명하 의사 자료 방위청서 첫 발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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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독립운동가 조명하(趙明河·1905~1928·사진) 의사가 대만에서 천황의 장인 구니노미야(久邇宮)육군대장을 살해하려던 의거의 전모를 밝히는 자료가 처음으로 발굴, 공개됐다.

'더 채널'의 근현대사연구소(소장 신운용)가 최근 일본 방위청연구소에서 찾아낸 『밀대일기 소화3년(密大日記 昭和3年)』 제 4권 중 '대중사건에 관한 군부입장에 관한 건(件)'이라는 문서 속에 아직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조의사와 그의 의거에 대한 자세한 기록이 담겨 있다.

지금까지 독립운동가로서 조의사에 대한 평가와 달리 제대로 된 연구가 부족했고, 그에 관한 기록도 주로 구전에 따른 것이어서 이번 자료는 그를 새롭게 조명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1928년 5월 14일 당일 시해의거 실황을 시작으로 조의사의 행적과 성격, 사건의 전말, 취조상황, 수사기록 등을 자세히 전하는이 자료는 구니노미야 살해 기도 사건의 책임 소재를 파악하기 위해 군부가 작성한 것이다.

이 자료에 따르면 1905년 4월 4일 황해도에서 태어난 조의사는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20세에 결혼한 후 황해도 신천군청 재무과에 근무했으며, 결혼한 해에 공부하기 위해 일본 오사카(大阪)로 갔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메리야스 공장 잡역부로 일하던 그는 오사카 상고 야학부에 진학했으나 열악한 환경과 일본인의 차별 때문에 학업을 중단하고 오사카상고 교장의 추천으로 신분증명서를 얻어 대만으로 건너간다.

그러나 대만에서도 월급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등 수모를 당하다 28년 5월 14일 오전 10시쯤 타이중(臺中)시 다이쇼초(大正町) 도서관 앞에서 구니노미야 일행의 처단을 시도한다.

이 자료는 '독검으로 구니노미야를 찔렀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폭탄을 던졌으나 실패,잡혀서 사형되었다'(『원색세계대백과사전』) 같은 기존의 상황설명이 잘못된 것임을 밝혀준다. 도서관 앞에서 '단검을 들고 무개차로 접근해 처단하려 했으나 실패하자 2차로 단도를 던져 구니노미야를 처단하려 하였으나 실패했다'고 적고 있다. 이외에도 임정인사와의 관계, 거사 예행연습 등 기존 기록들의 사실 여부를 밝히는 등 향후 검토해야 할 부분이 적지 않다.

조의사의 의거는 당시 일본이 대륙진출을 본격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대만과 중국에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일제는 중국 본토 산둥(山東)지역 출병으로 중국 침략 전쟁을 본격화하면서 일본왕 히로히토(裕仁)의 장인인 구니노미야 육장대장을 육군특별 검열사로 대만에 파견했다.

그러나 이 자료가 일본의 군부에서 작성한 것이어서 조의사를 비하하는 평가가 포함되는 등 왜곡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조의사가 효자였던 점을 인정하면서도 마약을 한 적이 있으며 거사가 매우 우발적인 행동이었던 것으로 기술하고 있는 대목이 특히 그렇다.

박성수명예교수(한국정신문화연구원·독립운동사)는 "이 문헌의 사실관계를 따져보면 조의사의 의거의 전모를 밝히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될 것"이라고 평가하고 "의거 계획을 사전에 전혀 눈치 채지 못해 기습적으로 당한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쓰여진 기록이어서 교묘하게 왜곡되어 있는 점에 대해선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김창호 학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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