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t place 뜨는 상권 현지 르포] ① 서울 홍대입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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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20~30대 서울의 젊은이들이 뽑은 뜨는 상권 1위는 ‘홍대입구’다. 조사 대상인 1047명의 서울시민 중 19%인 202명이 이곳을 꼽았다. 홍대입구는 서울 홍대입구역(지하철 2호선)부터 홍익대 정문에 이르는 길인 서교로를 중심으로 한 대학가 상권이다. 먹을거리, 입을거리, 즐길거리가 밀집해 있는 이곳을 살펴봤다.'

지난달 19일 오후 2시 서울 동교동 새물결2길. 홍대입구역 근처인 이곳은 ‘걷고 싶은 거리’란 별칭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고깃집·주점 등 먹을 곳이 밀집한 이 길 한가운데에선 간이무대에 오른 ‘잔다리 밴드’의 공연이 한창이다. 무대 주변엔 50여 명이 앉아 공연을 즐기고 있다. 밴드에서 기타를 치던 김해원(28)씨는 “직장인 어르신들과 함께 록 밴드를 꾸려 틈틈이 이곳에서 공연을 한다”며 “눈치보지 않고 공연하기에 가장 편한 곳”이라고 말했다.

홍대 문화 소개 잡지인 ‘스트리트H’ 편집장 정지연(39·여)씨는 “먹고, 마시고, 쇼핑할 수 있는 곳은 많다. 하지만 즐길거리까지 원스톱으로 할 수 있는 곳은 홍대가 유일하다고 생각한다”며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속도가 빨라 문화를 선도한다는 이미지도 갖추고 있다”고 말했다.

이곳의 가장 큰 특징은 자유로운 문화. 문화기획가인 류재현(46) 상상공장 대표는 “정해진 공연·축제뿐 아니라 수시로 열리는 ‘게릴라식’ 공연도 볼거리” 라고 말했다.

홍대 앞의 자유로운 문화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클럽이다. ‘클럽 데이(매달 마지막 주 금요일)’에는 홍대입구역 4, 5번 출구에 인파가 밀려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붐비는 진풍경이 벌어진다. 이 지역 21개 클럽이 뭉쳐 만든 이날엔 2만원만 내면 21개 클럽 어디든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다. 장양숙(37·여) 클럽문화협회 총무는 “2001년 시작한 클럽 데이가 지난달 110회를 맞았다”며 “클럽 데이엔 하루 7000~1만 명이 찾는다”고 말했다.

자유로운 문화는 근처 상점에서도 느낄 수 있다. 70석 규모의 대형 포장마차인 ‘삼거리포차’가 대표적이다. 클럽 골목에 자리 잡고 있는 이곳 입구에는 ‘합석 시 중간에 계산해야 합니다’란 문구가 붙어 있다. 주변 클럽에서 춤을 추고 나온 남녀의 합석이 잦은데, 계산할 때 말다툼이 생길 수 있어서다. 심윤재(42) 삼거리포차 사장은 “종종 취기가 오른 손님이 매장에 틀어놓은 음악에 맞춰 춤을 출 정도로 자유로운 분위기”라고 말했다.

◆골목까지 파고드는 상권=홍대입구 상권은 네 구역으로 나뉜다. 홍대입구역 5번 출구 앞 KFC 골목으로 들어오면 만나는 길이 ‘걷고 싶은 거리’다. 주점·고깃집이 밀집해 있다. 주말이면 다양한 길거리 공연이 열리는 곳이기도 하다. 1997년부터 이곳에서 주점을 운영하고 있는 한 사장은 “1인당 1만~2만원을 들여 부담없이 안주로 먹을 수 있는 탕·고기가 주 메뉴”라며 “오후 9시쯤이 가장 붐비고, 주로 20~30대가 들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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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고 싶은 거리를 따라 서교로 방향으로 걸어오다 길을 건너면 어울마당길이 나온다. 이곳 초입에는 ‘365번지’로 알려진 보세 옷가게가 줄지어 있다. 주로 여성용 옷과 신발·액세서리를 파는 곳이다. 대학생 박소연(25·여)씨는 “값도 싼 편인 데다 독특한 디자인의 옷이 많아 종종 들른다”고 말했다. 어울마당길과 홍대 정문 사이 골목에는 각종 음식점과 카페·주점이 몰려 있다.

어울마당길 끝 상상마당 좌우가 엔비, M2, 에반스, dd 등 클럽이 몰려 있는 ‘피카소 거리’란 이름의 클럽 골목이다. 90년대 초반(사브)부터 생긴 클럽 수십 곳이 둥지를 틀고 있다. 록·일렉트로닉부터 재즈·힙합까지 다양한 음악이 나오는 클럽 덕에 주말 저녁마다 불야성을 이룬다. 미국인 관광객 셰인 필론(32)은 “명동·이태원 등과는 달리 똑같은 옷을 입은 사람이 별로 없을 정도로 다양한 사람을 만날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상상마당 건너편 공영주차장길(일명 ‘주차장 골목’)을 따라 상수역(지하철 6호선)에 이르기까지 구석구석 숨어 있는 것이 카페 골목이다. 아기자기한 디자인의 ‘갤러리 카페’가 많아 여성들이 주로 찾는다. 직장인 박은미(31·여)씨는 “특색 있는 카페를 골라 갈 수 있어 자주 온다” 고 말했다. 홍대입구 상권은 서교로를 중심으로 상수역과 양화로 부근까지 커졌다. 김경연(39) 꿀벌부동산 대표는 “아무리 발전하더라도 (상수역·양화로라는) ‘선’을 넘지는 않을 것”이라며 “결국 서교로를 중심으로 양날개처럼 펼쳐진 동교동·서교동이 홍대를 찾는 이들의 아지트로 남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상업화를 싫어하는 ‘홍대 매니어’들은 서교로에서 멀리 떨어진 골목을 파고든다. 직장인 박지혜(27·여)씨는 “특색 있던 카페들이 점차 사라지고 대형 프랜차이즈 카페가 많이 생겨 골목 안 깊숙이 숨어 있는 소규모 카페를 자주 찾는다”고 말했다. 전태유(49) 세종대 유통산업학과 교수는 “비싼 임대료를 견디지 못한 소규모의 특색 있는 가게들이 점차 서교로에서 멀어지고 있는 것”이라며 “‘홍대스러운’ 문화를 좇는 젊은이들은 점차 골목으로 향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올해 말부터는 어울마당길 아래로 지하주차장이 생긴다. 진경식(44) 마포구청 도시계획과장은 “지하 1층은 상가와 문화시설로, 2·3층은 600여 대의 자동차를 주차할 수 있는 주차장으로 꾸밀 계획”이라며 “2013년 6월 주차장을 완공하면 홍대입구 상권이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낮엔 학생·직장인, 심야엔 클러버
지하철 첫차 시간 되면 인파 썰물”

홍대입구 랜드마크 KFC 홍대점

서울 지하철 2호선 홍대입구역 5번 출구를 나서면 KFC 매장과 마주친다. 20~30대 중 가장 많은 사람이 이곳을 랜드마크로 꼽았다. [최승식 기자]

지하철로 서울 홍대입구를 찾는 사람들이 마주치는 첫 관문. 2호선 홍대입구역 5번 출구 앞 KFC 매장이다. 홍대입구를 뜨는 상권이라고 답한 이들이 랜드마크로 꼽은 것이 KFC다. 약속을 기다리는 사람들 수십 명이 서 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는 곳이다. 여자친구를 기다리던 대학생 김봉호(24)씨는 “한 달에 서너 번 홍대입구를 찾는데 여자친구와 주로 이곳에서 약속을 잡는다”며 “번화가 길목에 있어 잃어버리지 않고 찾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KFC 홍대점은 1999년 9월 이곳에 터를 잡았다. 208㎡(63평), 105석 규모로 2층짜리 매장이다. 매장에서 일하는 종업원은 10여 명. 2008년 2월부터는 24시간 영업하고 있다. 김지훈(34) KFC 홍대점장은 “평일에는 1000~1200명, 주말에는 1700~2000명이 방문한다”고 소개했다.

개성 강한 홍대입구에 자리 잡은 이 매장에 들르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김 점장은 “낮에는 대학생·직장인이 주로 들르지만 자정을 넘기면 화려한 복장의 ‘클러버’(클럽을 즐기는 사람)와 취객을 쉽게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불야성인 곳에서 24시간 영업하다 보니 새벽에는 진풍경도 벌어진다. 그는 “새벽 4시까지 놀다가 매장에 들러 음료수 한 잔만 시켜놓고 2층에서 지하철 첫차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다”며 “4시30분쯤 첫차가 오면 사람들이 한꺼번에 빠져나가는 진풍경이 연출된다”고 말했다.

다양한 방문객이 들르다 보니 생기는 고충도 있다. 청소 문제다. 그는 “짙게 화장한 클러버들이 매장에 들러 탁자에 기댈 때 화장품 자국이 남아 청소가 쉽지 않다”며 “아르바이트생이 처음 들어왔을 때 가장 먼저 알려주는 것도 ‘탁자에 묻은 화장품 지우는 법’”이라고 말했다. 매장 앞 청소도 쉽지 않다. 매장의 얼굴이나 다름없는 공간이라 끊임없이 신경 써야 한다. 주말엔 15분에 한 번씩 직원들이 나와 매장 앞을 청소한다.

이곳이 랜드마크로 꼽힌 비결은 뭘까. 그는 “바로 옆 건물에 있던 파스쿠찌 매장이 자리를 지켰다면 KFC가 랜드마크로 꼽히지 못했을지도 모른다”며 “주변 매장이 빨리빨리 바뀐 데 비해 12년 동안 한 자리를 지켰다는 점이 KFC가 랜드마크로 선정되는 데 한몫한 것 같다”고 말했다. 

글=김기환 기자
사진=최승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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