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푸껫에 넘친 동포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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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혁아, 저 세상에서 영생하거라."

지난해 12월 30일 저녁 태국 푸껫 시내의 왓꼬싯 사원에선 피피섬에서 4년10개월의 짧은 삶을 마감한 박민혁군과 김상현(72)할머니의 장례식이 치러졌다. 민혁의 시신을 담은 관이 장례식장 옆의 화장터 불길 속으로 들어가자 엄마는 영정을 가슴에 꼭 끌어안고 영별(永別)의 긴 입맞춤을 했다. 곁에 있던 아빠 박효원(35)씨의 눈가엔 그렁그렁 눈물이 맺혔다. 민혁 엄마는 "가슴이 찢어질 것 같지만 아들의 영혼은 편하게 갔을 것"이라고 울먹였다.

장례식엔 숙연한 표정의 교민 200여명이 참석해 종이로 만든 조화를 바치면서 어린 영혼을 위로했다. 이들은 한국인 관광객이 연 20만명에 이르는 푸껫 지역에서 여행사.식당 등 관광 관련 업종에서 일하고 있다. 이번 사태로 인천~푸껫 직항 노선이 중단되고 관광객의 발길이 끊기는 상황을 맞았지만 실종자 수색, 사망자 장례, 부상자 치료에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민혁의 영정이 놓였던 옆자리엔 신혼여행을 왔다 카오락에서 불귀의 객이 된 이혜정(26)씨가 실종 상태인 신랑 조상욱(28)씨를 기다리고 있다. 그의 사진 앞에는 신혼의 꿈을 가득 담았을 여행 가방이 파도에 할퀸 상처를 드러낸 채 놓여 있다. 사원 내 합동분향소에서 한국인 사망자 8명의 위패를 밤새 지키는 사람들도 교민이다.

이들의 자원봉사에 힘입어 한국인 피해 규모는 빠르게 윤곽을 잡아가고 있었다. 윤지준 주(駐)태국 대사는 "200여명의 소재를 확인해 달라는 요청이 들어왔으나 그중 100여명은 무사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푸껫에서 10년째 살고 있는 이한주(49.식당업)씨는 31일 "단체 관광객은 거의 확인이 끝났다"면서 "교민들이 서로 연락망을 가동하며 최대한으로 소재를 확인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그는 다른 교민들처럼 닷새째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피피섬 등지에선 한국의 119 구조대와 KOICA 재난복구단, 그리고 민간 단체들이 가세해 실종자 발굴작업에 박차를 가하는 중이다. 푸껫의 참혹한 현장에는 새해의 희망을 여는 뜨거운 동포애가 넘쳐 흐르고 있다.

이양수 홍콩 특파원<푸껫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