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3>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 : 東西'문명의 다리'부활을 꿈꾼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9면

우즈베키스탄은… 1991년 소련의 해체와 함께 역사 속에 부활한 옛 실크로드의 핵심국가. 비단길의 중심도시였던 사마르칸트·히바·부하라 등이 모두 영토 내에 있다. 과거부터 동서교류와 문명융합의 상징적 국가로, 독립 후 실크로드 시절의 영화를 되살리기 위한 국가건설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중앙아시아의 타지키스탄에 이어 우즈베키스탄을 찾은 것은 이 지역이 9·11 테러의 영향 속에서도 새로운 동서문물이 교류·융합하는 상징적인 지역이기 때문이다.

타슈켄트에서 자동차를 이용해 남서쪽으로 4시간 정도 달리면 사마르칸트가 나온다. 지금은 광활하게 펼쳐진 대지 위에 잘 닦인 도로가 있고 그 위를 승용차·화물차들이 시속 1백㎞ 이상의 속도로 끊임없이 오가지만 과거엔 낙타를 앞세운 캐러밴(隊商)들이 이 길의 주인이었다.

당시 캐러밴들은 이 길을 따라 끊임없이 외지인들과 섞이고 싸우면서 문물의 유입과 흐름을 주도했고, 이러한 흐름에 따라 이어진 동서 교류의 역사 속에서 지금의 우즈베키스탄 부하라 출신의 안녹산(安山), 키슈 출신의 사사명(史思明) 같은 장수는 중국사의 흐름을 바꾸기도 했다.

하지만 실크로드의 주역이었던 캐러밴은 세월이 흐르면서 점점 사라졌고, 이 지역을 경유했던 물산과 사상의 흐름은 거대 제국의 출현으로 오히려 방해를 받았다. 특히 소련 시절에 이 지역은 거의 개방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소련이 해체된 후 이 지역 지도자들과 주변 국가의 학자들은 중앙아시아 지역의 부활과 관련해 단순한 민족국가·독립국가의 출현보다 동서교류의 장이 역사에 다시 열렸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중앙아시아 문명사 연구의 권위자로 우즈베키스탄 학술원 최고훈장과 그루지야공화국 학술최고문화훈장 등을 받은 에두아르드 르트벨라제 교수(타슈켄트 예술학 연구소)는 "소련 시절 이 지역이 세상에 닫혔던 것을 이데올로기적인 측면만 강조해 이념 벨트의 충돌로 판단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한다.

그는 "실크로드의 소멸은 여러 이유가 있다. 냉전 이후 이 지역이 외부와 단절된 것은 문명사적으로 볼 때 동서문물교류의 역사가 왜곡됐으며 문명이 국가와 이데올로기의 통제에 의해 속박당했던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제 그 길이 다시 열린 것이며 이는 시간이 갈수록 세계사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르트벨라제 교수의 말처럼 요즘 이 길 위로 멀리는 이란·중국·유럽 등지에서부터 수출품을 싣고온 트럭들과 관광객을 가득 태운 버스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과거 실크로드의 중심도시들을 오갔던 캐러밴처럼 이들이 다시 우즈베키스탄 등 중앙아시아의 도로 위를 활발하게 달리고 있는 것이다. 또 이러한 분위기에 편승해 과거 초원의 비단길처럼 실크로드의 옛길을 다시 활성화하려는 공사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내륙국가인 우즈베키스탄을 세계와 연결시키는 이런 운송·통신망 공사 중 규모가 가장 큰 게 TRACECA(Transport Corridor Europe-Caucasus-Asia)다. 이 프로젝트는 중앙아시아에서 카스피해 동쪽 지역을 국제 고속도로 및 철도 등으로 연결해 유럽·아시아 간의 국제 교류망을 현대화하려는 계획으로 32개국 이상이 참여하고 있다. 이외에도 중국·우즈베키스탄·키르기스스탄 3국이 합의한 톈산 남로의 옛 실크로드 2천㎞를 복원하는 계획도 착착 진행 중이며 중국 상하이(上海)~타슈켄트~독일 프랑크푸르트 간 27만㎞의 광케이블 건설계획도 20개 이상 국가들의 참여 속에서 건설이 거의 완료됐다.

이러한 상황에서 발생한 9·11 테러는 우즈베키스탄에 새로운 도전과 고민을 안겨주고 있다.

미국은 동서교류의 요충지로서의 우즈베키스탄의 위치에 주목해 대 탈레반 보복전이 종결된 이후에도 카나바드 공군기지의 제10산악사단 등을 철수하지 않고 장기 주둔시키려는 의도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문제가 그렇게 간단치는 않다. 전통적 연대를 강조하는 러시아, 이슬람의 끈을 가지고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터키, 이란 등과 함께 미국 영향력의 확대를 경계하는 중국의 움직임이 미묘한 긴장을 조성하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타슈켄트 세계경제외교대학의 아드함 베크무라도프 부총장은 "9·11 테러 이후 우즈베키스탄은 미국·러시아·중국 3대 강대국의 이해관계가 교차하는 지점에 놓이게 되었다. 쉽지는 않겠지만 이들 간의 적절한 균형이 유지된다면 우즈베키스탄의 국가이익은 극대화할 것이지만 쉽지 않은 과제"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정치학자들과 달리 문명사가들은 장밋빛 전망을 갖고 있다. 르트벨라제 교수는 "우즈베키스탄의 역사적 경험에서 강대국들 간의 이해가 상충되고 이를 조절해내야만 하는 상황이 생소한 것은 아니다"면서 "현재의 긴장도 과거의 예에서 보듯 어렵지 않게 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문명사학자들의 말처럼 이 지역은 과거 국제 정치·경제의 중요한 교류지역이었다. 각지에서 사신들이 빈번히 몰려왔으며 한반도도 예외가 아니었다. 사마르칸트 아프라시압에 발굴돼 전시돼 있는 고분벽화는 이러한 교류의 모습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7세기 중반 이 지역을 통치했던 군주의 잔칫날 각지에서 온 사신들이 아프라시압 궁전에서 군주에게 축하하는 모습을 그려놓은 이 벽화엔 모자에 깃털을 꽂은 조우관(鳥羽冠)을 쓴 두명의 사신이 그려져 있다.

이를 발굴한 프랑스 고고학팀과 우즈베키스탄 고고학연구소 측은 "머리의 깃털장식이나 의복 등을 고려할 때 이 그림은 고구려에서 파견된 사신이 틀림없다"고 말한다. 벽화 속의 고구려인은 중국·로마를 비롯한 동서의 여러 나라에서 온 사신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이 아프라시압 벽화가 상징하듯 우즈베키스탄이 자리잡은 아무 다리야강 유역의 초원지대는 고대로부터 동서교류의 중심지였다. 알렉산더 대왕의 침공(BC 4세기), 아랍인 진출(7~8세기), 몽골 침공(12세기), 티무르 제국 건설(14세기), 러시아 진출(19세기) 등이 순차적으로 이어졌으며 다양한 민족과 문명이 공존하고 충돌하며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내는 문화와 민족의 용광로였다.

우즈베키스탄은 과거의 역사적 경험을 되살려 유라시아 중심지로 부활하려는 것이다. 실크로드 시대처럼 또다시 동서교류의 주역국가로 비상하려는 우즈베키스탄. 그들의 이러한 꿈과 몸짓이 단순한 교류 차원을 넘어 동과 서를 융합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을지는 아직 불확실하다.

우즈베키스탄=박수헌 교수(경희대)·김석환 논설위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