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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례적 대통령측근 공격 脫DJ로 선회여부 촉각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민주당 한화갑(韓和甲)대표가 김대중(DJ)대통령의 '측근 책임론'을 들고나왔다. 19일 국회 대표연설에서 DJ 아들들의 비리 문제를 언급하면서다.

韓대표는 "비리를 막지 못한 데 대해 대통령 보좌진과 사정기관 책임자들은 응분의 책임을 느껴야 한다"고 말했다.

韓대표의 발언은 박지원(朴智元)대통령 비서실장과 국가정보원장을 지낸 임동원(東源)대통령 외교안보특보, 신건(辛建)국정원장을 겨냥한 발언으로 해석됐다.

하지만 韓대표는 이어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누구를 지칭한 것은 아니다"고 발을 뺐다.

이낙연(淵)대변인을 통해선 "우리 당의 도덕 의식을 표현하고, 해당 인사들의 마음의 자세를 주문한 것이지 문책을 요구한 것은 아니다"고 다시 한번 해명했다.

발언 배경에 대해 대변인은 "韓대표가 통절한 반성과 자책을 표현한 것은 한나라당 이회창(會昌)대통령후보의 5대 의혹 규명의 당위성을 설명하기 위해서"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처럼 韓대표의 진의에 대해 혼선이 빚어지자 한 핵심 참모는 "韓대표도 DJ의 비서 출신인데 그 이상 거론하는 것은 어려운 것 아니냐"고 말했다.

이 참모는 韓대표의 '대통령 측근 책임론'에 대해 "나름대로 정치 생명을 건 승부수"라고 강조했다.

그러고 보면 韓대표로서는 하기 어려운 말을 한 것도 사실이다. 그는 당내에서 DJ와의 차별화 논란이 나올 때마다 공개적 입장 표명을 꺼렸다.

아태재단 해체나 金대통령의 장남 김홍일(金弘一)의원의 탈당 주장이 나왔을 때도 그는 "공론화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쪽이었다.

때문에 韓대표의 이날 대표연설 내용은 "노무현(武鉉)대통령후보에 이어 韓대표도 '탈(脫)DJ' 노선을 분명히 하고 나선 것"으로 해석된다.

韓대표의 발언 배경엔 8·8 재·보선을 앞둔 한나라당의 비리 공세를 무디게 하려는 계산이 깔려 있다. 한나라당은 '7·11 개각'의 중립성 시비를 제기하고 있고, 재·보선 국면에서 DJ 보좌진의 거취 문제를 쟁점화하려 하고 있다.

韓대표로서는 '탈DJ'를 통해 북한의 서해 도발로 비판받고 있는 햇볕정책이나 마늘 협상 잘못 등의 악재가 선거에 미칠 부정적 영향을 차단하려고 했을 수 있다.

하지만 고민은 남는다. 당장 "韓대표만 청렴결백하다는 말이냐"(安東善 의원), "너무 강한 것 아니냐. 당내에서 문제가 될 수도 있지 않으냐"(鄭均桓 총무)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청와대의 견제와 압박도 예상된다. 매우 미묘한 상황에 처해 있는 韓대표가 당 안팎의 다양한 이해와 목소리들을 어떻게 수렴하고 조정해 나갈지 그의 정치력이 시험대에 올랐다.

이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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