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언비어·극단주의 결합 성찰 없는 대중선동 두려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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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1775년 1월 10일 모스크바 광장에는 수만의 인파가 모였다. 농민봉기를 주도했던 코사크 농민의 아들 푸가초프의 사형집행을 보기 위해서였다. 처형 방식은 단순한 참수가 아니었다. 예카테리나 여제(帝)는 망나니에게 먼저 양팔과 다리를 차례로 잘라낸 다음 마지막으로 머리를 치라고 명령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착오가 생겼다. 명령과 달리 망나니가 먼저 머리를 잘라버린 것이다. 관중들 사이에서 심한 동요가 일어난 것은 물론이고, 이것은 20세기까지 이어진 '푸가초프의 전설'이라는 유언비어의 씨를 뿌렸다.

'예카테리나 여제가 푸가초프에게 동정심을 품어 고통을 줄여줄 것을 몰래 명령했다''푸가초프 잔당이 손을 써 고통을 덜어주게 했다''농민에게 우호적이었던 표트르 3세(예카테리나 여제의 남편으로 그녀와 권력을 다투다 살해당함)가 다름 아닌 푸가초프였으며, 그 대신 다른 사람을 몰래 사형한 것이다' 등.

이 '푸가초프 전설'은 유언비어의 사회적 기능을 설명하는 전형적 사례로 꼽힌다. 이 전설은 유언비어라는 것이 확인된 사실에다 해석을 집어넣어 총체적 상을 그려내는 '접합제'이자 민중의 중요한 의사소통 수단임을 보여준다. 민중들 사이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유언비어는 민중이 자신의 의견을 제시·교환하는 것은 물론 많은 사람이 가담함으로써 훨씬 논리적으로 설득력 있는 해석을 만들어 내는 중요한 인식론적 의미를 지닌다는 것이다.

한때 우리 사회에서 이를 '유언비어 유포죄'로 다스린 적이 있다. 권력이 독점한 의사소통에서 소외된 시민들의 의견이 투영된 유언비어가 자연발생적으로 퍼져나가는 것은 권력에 잠재적 위협이 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당시 유언비어 중에 거짓·과장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사실로 입증되는 사례도 적지 않았다. 권력자와 연예인에 관한 소문이나 '80년 광주항쟁'의 진실은 유언비어가 오히려 정확할 수도 있음을 보여주었고, 우리가 유언비어에 대해 관대한 태도를 갖게 하는 데 일조하기도 했다.

지난 월드컵에서 독일과 준결승이 끝난 직후 한 방송 진행자의 말 때문에 촉발된 유언비어는 큰 파장을 몰고 왔다.'독일 선수의 약물 복용 사실이 드러나 한국이 독일 대신 결승에 진출한다'는 것이 그 요지였다.

순식간에 수십 통의 확인 전화가 신문사에 쏟아졌다. 인터넷과 핸드폰으로 무장한 시민들 사이의 전파력은 경악스러울 정도였다.

하지만 소름이 끼쳤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었다. 과잉 열망이 순식간에 '허구'를 '사실'로 탈바꿈시키는 왜곡된 의사소통 구조가 두려웠기 때문이다.

월드컵 응원열기에 영합하지 않으면 '반애국주의'로 모는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정치적 사안이나 남북관계에서 대중의 정서에 영합한 극단주의가 판을 치고 있는 것은 큰 문제다. 도대체 '성찰'은 끼어들 여지조차 없는 상황에서 유언비어가 이런 극단주의와 결합할 때 전혀 의도하지 않은 결과가 빚어질 수도 있다.

실제로 유언비어는 관동대지진이나 유대인 학살때처럼 대중의 정서에 불을 질러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려는 선전이나 선동에 이용되어 왔다. 대선을 앞두고 우려되는 것도 바로 이같은 극단주의와 유언비어의 불행한 결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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