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아이] 중국은 북한의 ‘백기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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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서해를 마주하고 있는 한·중은 1992년 수교 이후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로 발전했다. 연간 무역액이 1500억 달러에 달하고 매주 650편의 여객·화물수송기가 오가고 있다. 적어도 돈이 오가는 분야에서는 전략과 협력, 동반이 삐걱대지 않고 잘 조율돼 왔다는 것을 말해주는 증거다. 하지만 시선을 외교·안보로 돌려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양국의 전략과 협력, 동반이 외교적 수사에 지나지 않음을 천안함 사건은 가감 없이 드러냈다.

실용주의가 국시(國是)가 되다시피 한 중국은 천안함 외교에서 중국식 실용주의가 무엇인지를 보여줬다. 자신들이 국가신용에서 14위라고 인정한 한국과의 명분 있는 실용적 협력보다 혈맹 북한에서 얻는 안보적 이익이 더 크다는 계산법이었다.

“정의를 실현할 것”이라는 원자바오 총리의 말을 통해 한껏 한국 외교라인의 기대감을 높여 놓더니 결국 중국은 북한을 감싸 안는 유엔 안보리 의장성명에 찬성했다. 이번 천안함 사태에서 중국이 취한 행보는 앞으로 한반도의 운명을 고민할 때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사석에서 만난 홍콩의 글로벌 투자은행(IB) 뱅커들이 한국의 통일 문제를 기업의 인수합병(M&A) 원리에 빗대 말한 적이 있다.

“중소기업 하나를 M&A하려 해도 체크리스트가 400개에 달한다. 하물며 분단을 극복하고 민족을 통합하는 문제는 수천, 수만 개의 체크리스크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우선순위 가운데 하나가 백기사 체크다. 무리하게 M&A를 시도하다 백기사 좋은 일만 시켜주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우호지분을 가진 백기사가 피인수 기업을 돕는다는 명분으로 피인수 기업의 지분을 확대해 결국 이 기업을 인수해 버리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순망치한(脣亡齒寒·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 성격이 강했던 북·중 관계에서 요즘은 갈수록 백기사의 존재감이 커지고 있는 느낌이다. 천안함 책임론이 불거지면서 국제사회의 압박이 거세지던 지난 5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중국을 찾았다. 이후 중국은 시간 끌기와 뭉개기를 거듭하다 유엔 안보리 의장성명에서 북한의 책임을 명시하지 않은 ‘집행유예’ 판정을 받아냈다. 천안함 침몰 사건은 중국이 책임 있는 대국 역할을 해줄 것을 꿈꿨던 한국에 뼈아픈 교훈을 남겼다. 무엇보다 한·중의 경제협력 확대로 장밋빛 꿈이 만발할 때도 북한의 안보 문제만 나오면 중국은 얼굴을 바꿔 북한의 백기사로 나선다는 것을 실감케 했다. 중국과의 전략적 안보 협력의 필요성이 어느 때보다 커지고 있는 것이다.

천안함 사태는 앞으로 10년 동안 한반도에 드리울 격동의 역사에서 중국의 그림자를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따라 한반도의 운명이 달라질 수밖에 없음을 재확인시켰다.

정용환 홍콩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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