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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억 손해보느니 300억 날리겠다” 아파트 부지 해약하는 건설사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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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4면

중견 건설사인 C건설은 2007년 4월 28대 1의 경쟁률을 뚫고 확보한 인천 영종하늘도시 내 아파트 부지를 지난달 포기했다. 토지를 분양한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 계약금 210억원을 떼이고 브리지론(정식 대출 이전에 단기간 빌려 쓰는 사업자금 대출) 이자 105억원을 손해 보는 어려운 결정이었다. 이 회사 사업팀장은 “분양함으로써 예상되는 더 큰 손실을 막기 위해 해약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미분양·입주지연이 심각한 상황에서는 총사업비에서 10% 이상 손해나는 일이 흔하다”고 덧붙였다. 이 프로젝트의 총사업비는 5000억원. 분양해 500억원 이상을 손해 보느니 315억원을 떼이고 손을 터는 게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공공택지의 아파트 용지를 산 건설사들이 요즘 땅을 잇따라 해약하고 있다. LH에 따르면 올 초 이후 14일 현재까지 전국의 공공택지에서 해약된 아파트 부지는 27건, 금액으로는 1조9089억원어치다. 건설업체들이 돈을 제때 내지 못해 연체된 땅도 109필지에 이른다. 인천 영종하늘도시의 경우 지난해부터 14일 현재까지 20개 필지가, 김포 한강신도시는 같은 기간 11개 필지가 해약됐다.


가장 큰 이유는 아파트를 팔아봤자 손해를 볼 정도로 사업성이 악화됐다는 것이다. 보금자리주택의 영향이 크다. D건설사 영업본부장은 “입지 좋은 보금자리주택이 많이 분양되는 상황에서 이보다 못한 수도권 공공택지 내 아파트가 수요자들의 관심을 끌기 어렵다”고 말했다.

청약심리 위축도 원인 중 하나다. H건설 마케팅팀장은 “초기계약률(분양 2개월간 계약률)이 40%는 넘어야 중도금 등을 받아 공사비를 댈 수 있는데 지금은 이를 기대할 수 있는 공공택지가 거의 없다”고 전했다.

업체들은 분양이 잘 돼도 수익을 내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하소연한다. W건설 분양팀장은 “분양가상한제로 수도권 공공택지에서 건설업체가 남길 수 있는 이익은 사업비의 5% 정도”라며 “요즘처럼 미입주와 계약자 요구가 많을 때는 100% 팔아도 손해를 볼 가능성이 크다”고 전했다.

금융회사들이 자금줄을 조이고 있는 것도 업체들이 땅을 해약하는 이유 중 하나다. K건설 자금부장은 “금융회사들이 착공하지 않은 아파트 사업장에 대해서도 대출금 회수를 독촉하고 있다”고 전했다. 국민은행 프로젝트금융부 관계자는 “손해날 가능성이 큰 사업장에 대해 무리하게 대출기간을 연장해줄 수 없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앞으로 해약은 더 늘어날 전망이다. B건설사 주택사업본부장은 “경기도 양주 옥정지구 아파트 부지 해약을 검토하고 있다”며 “은행에서는 대출금을 돌려달라고 하고 사업성은 불투명한 상황에서 계속 끌어안고 갈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해약 사태의 후유증은 크게 마련이다. 해약된 아파트 부지는 장기간 빈 땅으로 남기 때문에 도시계획 자체가 흔들린다. 아파트 사업이 제대로 안 되는데 상업시설 등의 기반시설 조성도 계획대로 될 리 없다. 올 초 영종하늘도시의 아파트를 분양받은 권모(40)씨는 “입주 때는 주변에 공터만 가득한 유령도시가 되는 게 아닌지 우려된다”고 말했다.

민간업체들이 대거 사업을 포기함에 따라 아파트 공급계획 차질도 불가피하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 두성규 건설경제연구실장은 “아파트 사업 포기는 2~3년 뒤 일시 공급 부족으로 이어질 수 있으므로 주택시장에는 불안 요인이 된다”고 지적했다.

함종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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