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82>제102화 고쟁이를 란제리로:31.'노 브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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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1990년대 중반 여성들은 속옷 패션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브래지어 위에 갖춰 입던 내의(언더셔츠)를 벗어던지는 여성이 늘어났다.

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노출은 금기에 해당했다. 94년 광주에서 경찰이 배꼽티를 입은 여성을 경범죄 처벌법 위반으로 즉심에 넘기는 해프닝까지 벌어졌을 정도였다.

"격식은 더이상 중요하지 않아!"

자유분방한 신세대 여성들의 선언이 곳곳에서 터져나왔다. 그들은 브래지어를 입은 뒤 막바로 겉옷만 걸쳤다. '몸매 개방'에 거리낌이 없어진 것이다.

그들은 몸에 꽉 끼는 옷을 즐겨 입었다.

천도 점점 얇은 것을 찾았다. 여성들의 노출 성향은 핫팬츠·초미니·쫄티·배꼽티 유행을 낳기도 했다.

내의를 벗어 던진 여성들은 브래지어에 더욱 신경을 썼다. 가슴을 가리는 따위의 일은 어머니 세대에서나 떠받들 '전통'으로 치부했다. 이제는 가슴을 잘 드러낼 수 있는 브래지어가 필요한 시대였다. 겉옷과 잘 어울리는 패션을 연출하는 것도 브래지어의 몫이었다.

여성들은 깔끔한 디자인을 원했다. 장식용 레이스는 이미 거추장스러운 존재였다. 천을 두세 조각 붙여 컵을 만드느라 생긴 재봉선도 가슴의 곡선미를 구기는 흉물 취급을 받았다.

옷을 입었을 때 브래지어를 착용했는지 안했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자국이 드러나지 않는 브래지어가 필요했던 것이다.

"몰드 브라가 어떻겠습니까?"

신제품 개발팀의 한 직원이 불쑥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순간 나는 긴장했다. 몰드(mold) 브래지어라니. 내가 70년대 중반에 이미 만들었다가 실패한 작품이 아닌가. 그걸 다시 만들라니. 정신 나간 소리 아닌가.

사실 나는 그때에도 몰드 브래지어를 계속 생산은 하고 있었다.

금형에 스펀지를 넣어 고열로 압축해 컵을 만들어 봉제선이 없었지만 여성들에게 철저히 외면을 받고 있었을 뿐이다.

그렇다고 생산을 중단할 수는 없었다. 조금씩 만들어 매장에 구색용으로 깔아놓았다.

매장 전면은 볼륨업 브래지어가 차지했고 몰드 브래지어는 구석에 처박혀 있었다. 어쩌다 찾는 고객이 있어 매장에는 꾸준히 비치하고 있었던 것이다.

"요즘 패션에는 브래지어에 봉제선이 없어야 합니다. 몰드 브라가 딱 맞는 제품입니다."

디자인실 직원들도 맞장구를 쳤다. 나는 직원들의 의사를 따르기로 했다. 하지만 마음 한켠에는 불안감이 가시지 않았다.

"20년 전의 악몽이 되살아나는 건 아닐까."

직원들은 나를 또한번 놀라게 했다.

"제품이름을 '노브라'로 정했습니다."

노 브라(No Bra)라니. 브래지어를 하지 않았다는 뜻 아닌가. 브래지어의 존재를 부정하는 이름을 제품명으로 쓰다니. 그건 아무래도 지나친 파격이라고 생각했다.

"역발상도 필요합니다."

직원들은 머뭇거리는 나를 향해 목청을 돋웠다.

결국 노브라는 98년 3월 시중에 선을 보였다. 따지고 보면 70년대 만든 몰드 제품을 리뉴얼한 것이었다.

그런데도 시장에서 반응은 전혀 새롭게 나타났다. 몸에 꽉 끼는 옷을 즐겨 입는 패션 바람을 타고 몰드 브래지어는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출시 두달 만에 무려 10만장이 팔리는 대성공이었다. 매장 구석에서 천대받던 신세를 하루 아침에 청산한 것이다.

지금은 몰드 제품이 전체 브래지어 시장의 30%를 차지할 정도로 인기를 누리고 있다.

당시에 '했다는 거야~안 했다는 거야~'라는 광고 문구도 화제였다.

도발적인 표현으로 개성이 강한 신세대 여성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던 것이다.

정리=이종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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