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시아 대재앙] 한국인 부상자들 입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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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일 태국의 푸껫에서 쓰나미로 다리에 중상을 입고 대한항공편으로 귀국한 한 여성이 119구급대원의 도움을 받으며 항공기에서 후송되고 있다.[박종근 기자]

해일에 부러지고, 찢어진 채 돌아온 그들은 그저 흐느낄 뿐이었다.

피묻은 거즈와 깁스에 의지해 트랩을 내리는 사람, 불귀의 객이 되어 돌아온 노모…. 그들을 맞는 공항 관계자와 취재기자들도 눈물을 삼켰다. 승객 절반이 중경상을 입은 비행기는 병원을 방불케 했다.

30일 인천국제공항의 아침은 그렇게 시작됐다. 오전 7시52분 타이항공 TG 658편으로 공항에 도착한 배모(75.여)할머니의 시신은 검은색 운구차에 실려 가족들이 기다리는 현대아산병원 영안실로 향했다. 가족과 함께 단란한 한때를 보내기 위해 푸껫행 비행기를 탔던 할머니는 끝내 가족들의 기도를 저버리고 싸늘한 시신이 돼 화물칸에 실려 왔다.

두 시간여 뒤 도착한 대한항공 KE 638편에서 배씨의 딸 김모(46)씨는 들것에 실려 내렸다. 그녀는 태국 파통비치에서 어머니와 함께 해변을 거닐다 파도에 휩쓸려 왼쪽 발목을 잘라낸 상태였다. 유명(幽明)을 달리하면 부모.자식의 갈 길도 제각각인가. 그녀는 구급차에 실려 삼성서울병원으로 후송됐다. KE 638편에서 또 다른 부상자 모녀인 황모(52).이모(29)씨가 휠체어에 실려 내렸다.

황씨는 사고로 목과 아랫배에 심한 상처를 입고 봉합수술을 받은 채였다. 그녀는 뭔가 말하고 싶었는지 입술을 오물거렸으나 고통에 이내 말문을 닫았다. 그녀는 공항을 떠나기 전 "물길이 올라오는 것을 보고 쓰러졌는데 눈떠보니 병원이었어요"라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다리가 골절된 딸 이씨는 어머니를 포함해 탑승객이 모두 내린 뒤 한 시간여 만에 비행기를 내릴 수 있었다. 상처부위의 통증으로 몸을 가누지 못해 착륙 후에도 비즈니스석에 누워있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승무원이 "안심하세요. 이제 다왔으니까 기운 차리세요"라고 달랬지만 그녀는 담요를 뒤집어쓰고 몸을 가늘게 떨며 울음을 삭였다.

푸껫에서 환자와 함께 동승한 대한항공 항공보건팀 한복순(50.여.의사)씨는 "겉모습만으로 판단하긴 힘들지만 기내에서 통증을 호소한 환자가 많았다"고 말했다.

성한 채로 비행기를 내리는 승객들도 비통한 표정은 마찬가지였다.

김모(30)씨는 "그곳(푸껫)은 물의 지옥이었습니다. 아침을 먹고 호텔에서 해변으로 나오는데 갑자기 물이 덮쳤어요. 물에 빠져 이리저리 휩쓸리는 사람들을 보고 죽을 힘을 다해 호텔 뒷산으로 피했는데 3시간쯤 뒤 숙소에 돌아와보니 물건은 남은 게 없고, 여기저기 다친 사람들 신음으로 가득했어요"라고 사고 당시 아수라장을 묘사했다.

그는 "옆 좌석에서 들려오는 신음소리를 들으며 살았다는 안도감보다 미안한 마음이 사무쳤다"고 치를 떨었다. 비행기에는 실종된 가족을 찾기 위해 사고 발생 뒤 푸껫에 갔다가 허탕을 치고 돌아온 사람도 있었다. 초등학생 손녀를 데리고 입국한 임모(70)씨는 "큰손녀(20)는 시신으로 발견됐는데 며느리의 행방을 찾지 못했다"며 침통한 표정으로 울먹였다.

김기찬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joke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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