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총리 조기 총선 시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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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터키 연립정부가 각료들의 잇따른 사임·탈당으로 와해 위기를 맞은 가운데 뷜렌트 에제비트(77)총리가 10일 처음으로 조기총선 실시 가능성을 밝혔다.

에제비트 총리는 이날 터키 신문 밀리예트와의 인터뷰에서 "2004년 봄으로 예정된 총선을 앞당겨 실시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고 AFP통신이 보도했다.

에제비트 총리가 이끄는 민주좌파당(DLP)과 중도우파 모국당(ANAP)·극우 민족행동당(MHP)이 연합한 터키 연정은 8일 후사메틴 오즈칸 부총리 등 각료 4명이 자진사퇴하고 9일에도 각료 3명이 추가로 사임해 붕괴가 초읽기에 들어간 상태였다.

◇정치혼란 왜 일어났나=국제통화기금(IMF) 최대 채무국으로 전락할 만큼 악화된 경제에 대한 국민의 불만이 고조된 상태에서 에제비트 총리가 지병으로 두달째 정상 업무를 보지 못하면서도 총리직 유지를 고집함으로써 촉발된 정치불안이 연정붕괴 사태를 초래한 직접적 원인이다.

극우·좌파·이슬람원리주의 등 다양한 정파들이 난립한 탓에 총리가 정치력을 발휘하기 힘든 연정 형태로만 정권이 유지돼온 터키 정치 특유의 구조적 요인도 작용했다.

1999년 집권한 에제비트 총리는 집권 초기 국가적 숙원인 유럽연합(EU) 가입을 위해 정치·경제개혁을 의욕적으로 추진해 왔으나 극우세력의 견제로 개혁이 지지부진해지면서 90년대 말까지 그런대로 유지해온 경제상황이 악화되기 시작했다.

IMF는 터키 경제회복을 위해 에제비트 총리 집권기간 중 3백10억달러를 지원했지만 구조개혁 부진으로 터키의 국가채무는 국민총생산(GNP)의 98% 수준까지 늘어났다.

지난 5월 시작된 두달 간의 '식물총리' 기간 중 경제는 더욱 악화돼 환율이 20% 하락했고, 금리는 15%나 상승했다.

정부의 지지율은 에제비트 집권 이래 최악인 10% 미만까지 떨어졌다.

총리의 부진한 개혁을 비판해온 후사메틴 오즈칸 터키 부총리는 지난 8일 이같은 상황을 등에 업고 각료직 사퇴와 탈당을 감행, 연정붕괴에 결정타를 날렸다.

◇경제위기 가중=세계적인 신용평가기관인 미국의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는 9일 터키의 국가 신용등급을 '안정적'에서'부정적'으로 하향조정했다.

터키 주식시장도 10일 정치위기에 대한 우려가 확산되면서 오전 거래에서만 3%가 하락했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정치불안이 계속되면 1백60억달러를 추가지원하려는 IMF의 계획도 흔들릴 우려가 있다" 며 "에제비트 총리의 용퇴와 공정한 총선 실시만이 경제난을 해결할 수 있는 열쇠라는 데 전문가들의 의견이 일치한다"고 분석했다.

강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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