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이란 옥죄기 … 한국 기업에 불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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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미국의 ‘포괄적 이란 제재 법안’ 발효에 따라 한국 기업의 대이란 사업이 타격을 입고 있다. 특히 외환·신한·우리은행 등이 9일 이란 금융회사와의 거래를 중단하면서 수출업체의 피해가 늘어날 전망이다.

관련업계와 금융계에 따르면 국내 은행들은 이란 은행과 수출입 대금 결제를 포함해 외환 거래, 지급 보증 등의 업무를 중단한 상태다. 상품을 이란에 수출한 후 현지 업체→이란 은행→국내 은행을 거쳐 대금을 회수하는 수출업체들로선 손실이 클 수밖에 없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대이란 채권 회수가 불가능해지면서 국내 기업의 피해 규모가 업체당 수천만~수억 달러에 이를 것이라고 추정했다.

A사는 이번 조치로 1억 달러의 수출 대금 회수가 곤란한 상황이다. 이 회사 관계자는 “지난주 거래 은행으로부터 ‘이란 은행에서 이미 입금된 수출 대금을 지급할 수 없다’는 통보를 받았다”며 “이란 제재가 예상됐다고는 하지만 이렇게 일방적으로 거래를 끊으면 어떡하느냐”고 말했다. 그는 “이란과 아직 거래를 중단하지 않은 일본이나 두바이 은행을 통해 우회적으로 자금을 돌리고 있지만 곧 한계에 다다를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란에서 플랜트사업을 하는 B업체는 공사 대금 1억8000만 달러를 받지 못할 수 있다고 걱정했다.

사태가 조속히 해결되지 않으면 2차, 3차 피해도 예상된다. 자동차강판을 수출하는 C사는 “이번 수출 중단으로 현지 자동차회사가 가동 중단에 따른 피해 보상을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연간 4300만 배럴의 원유를 이란으로부터 수입하고 있는 D정유사는 원유 도입에 차질을 빚을 것을 우려했다. 건설업계도 손해를 보고 있다. 이미 GS건설이 지난해 수주한 사우스파스 가스 탈황 설비 공사(16억 달러) 계약을 해지했다. 미래에셋증권 변성진 연구원은 “이란은 중동 플랜트 시장의 43%를 차지한다”며 “향후 이 시장에서 (이란 제재에 동참하지 않은) 중국이 주도권을 잡을 수 있다”고 말했다.

지식경제부 안병화 수출입과장은 “12일 관계 기업·기관이 모여 대책회의를 하고 피해 상황을 파악했다”며 “관련 부처와 협의해 대책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만간 기획재정부 주도로 대이란 제재 관련 태스크포스팀이 가동될 예정이다.

또 다른 정부 관계자는 “이란과의 거래 금지 품목이 나오려면 90일은 걸리는데, 국내 은행들이 너무 서둘러 거래를 끊은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 은행 관계자는 “위기관리 매뉴얼이 작동한 것”이라며 “명확한 정부 지침만 있었어도 이런 혼란은 덜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서울시립대 윤창현(경영학) 교수는 “미국의 대이란 제재는 이미 예견됐던 일”이라며 “이에 대비한 유기적인 시스템이 진작에 마련됐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대이란 교역 규모는 수출 39억 달러, 수입 57억 달러였다. 올 1~5월 수출은 21억 달러로 지난해 동기 대비 55% 늘었다. 주요 수출품은 합성수지·자동차·철강 등이다. 이란에서는 주로 원유를 수입한다.

이상재 기자

◆포괄적 이란 제재 법안=이란의 핵 프로그램에 타격을 가하기 위한 미국의 경제 압박 조치. 이번 제재안은 ▶이란 에너지 개발에 상품·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들의 미국 시장 참여를 제한하고 ▶이란 혁명수비대와 연관되거나 블랙리스트에 오른 기업 등과 거래하는 외국 은행을 미국 금융 시스템에서 차단한다는 게 주요 내용이다. 중국과 러시아·인도·파키스탄 등은 이번 제재에 동참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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