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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내 생각은…

동학농민군 정신 오늘에 계승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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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올해는 정치.경제.사회분야의 어려움 속에서도 유난히 웰빙(Well-being)문화가 붐을 일으킨 한 해였다. 얼마 전에는 웰빙도 중요하지만 웰다잉(Well-dying)도 생각할 때라는 말도 있었다. '어떻게 사느냐'에 못지않게 '어떻게 죽느냐'도 중요하다. 웰다잉을 들을 때마다 동학농민혁명군의 얼굴이 떠오른다.

사회.경제.정치적으로 어려운 조선말, 동학농민군은 1894년 음력 3월과 9월 두 차례 지방관리들의 수탈과 일본의 외세침탈에 항거하여 분연히 봉기했다. 전북 고부(현재 정읍)에서 시작한 동학농민군의 세력이 전국적으로 확산된 뒤, 같은 해 음력 11월 공주 우금티 들판에 집결한 동학농민군 주력부대는 일본군과 조선관군의 연합군과 전투를 벌이게 됐다.

당시 조선정부는 100여만명의 농민이 참여한 동학농민군의 혁명활동을 반란으로 규정하고 탄압하여 30만~40만명의 희생자가 발생했다. 동학농민군들은 참살을 모면하기 위해 국내외로 흩어져 이름과 성을 바꾸고 살아갔으며, 참여자와 그 유족들은 혁명에 참여한 사실을 감추기에 급급했고, 작성된 몇몇 자료마저 파기했다. 그러나 이들은 일제 강점기시대에는 항일의병활동에 다시 나섰다.

1920년대 조선사편수회의 자료정리에서도, 80년대 이후 20여 년간의 관계학자들의 연구에서도 당시 동학농민군의 혁명활동을 구체적으로 밝혀내지 못했다. 일부 정리자료에서는 지도자급 몇몇 사람의 이름이 언급되고 있을 뿐, 대다수의 참여자와 자세한 혁명활동에 대한 기록은 없다. 동학농민군의 활동에 대해 정확하고 구체적인 역사적 규명을 위해서는 보다 많은 시간과 인력이 필요하다.

그간 우리는 동학농민혁명군의 정신이 민주시민사회의 시민운동가들의 정신적 본령이라고 차마 말하지 못했다. 명예회복을 위한 특별법이 제정됨으로써 과거에 옥죄었던 '반란'이 이제는 떳떳한 '혁명'(시민운동)으로 명예회복이 이뤄졌다고는 하나, 법 제정으로 끝내지 말고 이들의 정신을 올곧게 계승해야 한다.

비록 동학농민혁명군의 목적은 좌절됐지만 외세침략을 물리치고 봉건사회의 폐정을 혁신하여 자주.평등.대동세상을 구현하고자 했던 동학농민군의 애국애족 정신과 '반외세.반봉건' 개혁정신은 항일의병활동, 3.1운동, 4.19혁명, 5.18광주민주화운동 등 민주사회의 시민정신으로 이어졌다. 이미 선진 외국에서 많이 시행하고 있듯이 이들에 대한 명예회복과 지역별로 역사적 고증을 바탕으로 한 각종 기념물 설립 등 다양한 기념사업을 통해 우리의 후손에게 올바른 역사의식을 심어주고, '웰다잉', 즉 '어떻게 죽어야 하는지'를 다시 한번 생각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원태섭 동학혁명 참여자 명예회복심의위 사무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