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판에 서서 마을을 보네] 1. 샛강<65>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3면

물이 점점 깊어져 배에까지 이르자 나는 어두운 물속에서 무엇인가가 내 발목을 잡아 이끌 것만 같았다. 내가 발을 멈추자 어머니가 내 손을 와락 잡아당겼다.

-엄마는 널 데리고 죽어야겠다. 그래야 다른 식구들이 편하게 살지.

나는 손을 빼려고 뒤로 잡아당기며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사정을 했다. 나중에 누나들이 어머니에게 전해 듣기로는 내가 "제발 살려주세요" 하면서 싹싹 빌었다지만 과장이다. 하여튼 내가 대단히 잘못을 저질렀는데 어머니가 물속에 옷을 적시면서까지 들어가는 게 싫었을 것이다. 나중에 어른이 되어 그때 얘기를 하다가 어머니에게서 직접 들었지만, 그녀는 일본 잡지 '문예춘추'에 나온 어느 단편소설에서 그런 장면을 보았다고 했다. 어머니는 어쩌다 시내에 나가는 일이 있으면 명동의 '딸라골목'에 있던 외서 파는 곳에 들러 '문예춘추'나 '주부의 벗' 등을 사들고 오곤 했던 것이다. 그러나 다분히 '문학적'이었던 이 장면은 내게 오랜 충격으로 남아 있었다. 자살의 가능성과 그 강렬한 유혹은 그 후 사춘기 내내 나를 지배한 몇 가지 중요한 감정들 중의 하나였다.

당시 중학교 진학은 입학시험을 치르게 되어 있어서 그야말로 초등학생 때부터 입시지옥의 시작이었다. 사오학년 때에 가교사에서 이리저리 옮겨다니며 자습으로 때우곤 했고, 그나마도 춘천을 오가느라고 출석률이 부진해서 기초를 게을리했던 나는 대번에 무엇이 부족한지 드러나게 되었다. 독해력과 암기 위주인 과목은 간단히 회복을 했지만 산수나 자연 같은 쪽은 어떻게 해서 그런 대목에 이르렀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야말로 아래 학년의 전과 참고서를 가져다가 다시 익혀야 할 판이었다. 십등 안에는 들었지만 조금씩 석차가 올랐어도 겨우 학년 말에나 가서 처음으로 옛날의 일등을 회복했다. 어머니는 나와 거의 매일 밤을 새우다시피 했다.

그 무렵에 벌써 아버지는 건강을 해쳤던 것 같다. 합격발표를 보러 어머니.아버지와 함께 갔는데 운동장에 방이 붙어 있었다. 먼저 내 수험번호를 발견한 아버지가 큰소리로 외쳤다.

-어이쿠, 붙었다!

그러는 아버지를 올려다보니까 눈에 눈물이 가득 고였고 귀 옆의 흰머리가 마치 노인처럼 보여서 속으로 조금 놀랐다. 돌아오는 길에 종로의 '그릴'에 들러서 양식이라고 돈가스를 사먹었는데 아버지는 수프만 조금 떠먹고는 내게 고기튀김을 모두 덜어주었다.

-속이 안 좋아요?

어머니가 물었지만 아버지는 아침을 늦게 먹었다고만 말했다. 합격 발표를 보던 날, 그의 어딘가 지치고 피곤한 모습을 발견했던 나는 그 며칠 전쯤에 아버지가 병원에 가지 않았을까 상상해본다. 사실 아버지는 육개월을 채 못 넘기고 그해 여름에 갑자기 돌아가시게 된다.

그림=민정기
글씨=여태명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