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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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지난 한달을 되돌아보면 '호모 루덴스(Homo Ludens)'는 설득력 있는 개념이다. 호모 루덴스는 '놀이하는 인간'이란 뜻으로, 네덜란드의 역사학자인 J 호이징가가 1938년 펴낸 명저의 제목이기도 하다. '호모 사피엔스'에서 강조하는 사유(思惟)만큼 놀이 역시 인간의 본질적 속성이란 얘기다.

놀이하는 인간의 속성이 집약돼 나타나는 순간이 축제다. 호이징가는 '일상생활이 정지되는''절대적인 유쾌함과 즐거움'을 축제의 특징으로 꼽았다. 인간이 열광하고 몰두하는 것도 축제의 한 특성이다.

축제는 출발부터 매우 종교적이었다.절대적인 존재에 제액초복(除厄招福·나쁜 일을 물리치고 복을 달라는 기원)을 비는 의식으로서의 축제는 세계 공통의 문화 코드다. 강신(降神·신이 내려옴)-영신(迎神·신을 맞이함)-접신(接神·신과 접촉함)-송신(送神·신을 보냄)으로 이어지는 상징적 과정은 노래와 춤이라는 제의(祭儀)의 형식으로 발전해왔다. 그래서 축제는 문화·예술·문명의 출발점이자 종합예술의 원형으로 주목받아왔다.

스포츠는 대표적 놀이인 동시에 축제의 중요한 한 형식이다. 기원전 8세기 트로이 전쟁의 영웅 아킬레우스는 자신의 갑옷을 입고 전사한 친구의 장례식 피날레를 스포츠 경기로 마무리했다. 스포츠의 어원은 '데포르타레(Deportare·슬픔을 없애다)'라는 라틴어다. 고대 그리스의 올림픽은 최고의 신 제우스에게 올리는 제의였다. 슬픔을 잊고 즐거움에 열광케 하는 축제의 한 형식으로서 스포츠는 탁월하다.

축제를 정치적으로 변형시킨 형식이 로마의 '키르쿠스(Circus·서커스)'다. 서커스는 로마황제가 정치적 불만세력이 될 가능성이 농후한 프롤레타리아트(하층 로마시민)들에게 눈요기 거리를 제공하기 위해 만든 대형 원형경기장의 이름. 로마제정의 우민정책을 '빵과 서커스'라고 비꼰 사람은 당대의 풍자시인 유베날리스다. 당시 원형경기장에서 이뤄진 구경거리는 '벤허'의 전차경주, '쿼바디스'의 사자(기독교도를 잡아먹는), '글래디에이터'의 검투시합 등이다. 초대황제 아우구스투스는 44년 재위하면서 44번의 대규모 서커스를 열었다.

지난밤 광화문의 국민대축제로 한달간의 잔치는 끝났다. 놀이와 축제는 '일상으로부터 격리된 유쾌함'이지만 궁극적으로는 '돌아가야 할 일상의 활력을 위한 재충전'이다.

오병상 문화부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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