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프처럼 열정적인 악기 없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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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7면

1천4백15개의 부품,6옥타브 반에 달하는 넓은 음역,7개의 페달, 47개의 현(絃)…. 귀족적이면서 맑고 영롱한 음색 때문에 '천사의 악기'라고 일컬어지는 하프 얘기다.

하프가 오케스트라에서 맨 처음 사용된 것은 글룩의 오페라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1762년)에서다. 하프와 플루트의 2중주로 펼쳐지는 '정령(精靈)들의 춤'은 피아노 독주곡으로 편곡돼 라흐마니노프가 생전에 앙코르곡으로 즐겨 연주했던 곡이다.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된 악기 중 하나인 하프는 춤과 음악이 어우러진 고대 제의(祭儀)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베를리오즈의 '환상교향곡'(1830년)에서도 하프는 신비로움과 이국 정서를 자아내는 악기로 취급됐다.

1994년부터 KBS교향악단 하프 수석주자로 활동 중인 나현선(32)씨가 오는 8일 오후 8시 호암아트홀에서 춤곡만으로 꾸며진 프로그램으로 독주회를 한다

최근 실내악·협주곡 무대에서 다채로운 활동을 보여준 그가 독주회 무대에 서기는 96년 이후 6년 만의 일이다.

'칼의 춤'으로 유명한 러시아 작곡가 아람 하차투리안의 '동양적 춤곡과 토카타'를 비롯, 바흐의 '류트 모음곡 제1번', 바르토크의 '루마니아 민속 춤곡', 투르니에의 '요정, 전주곡과 춤곡' 등을 들려준다.

또 '하프 춤곡'이란 별명으로 더 유명한 드뷔시의 '성스러운 춤과 세속적인 춤'을 연주한다. 대조적인 분위기의 2악장으로 구성된 '하프 춤곡'은 현악 합주와의 협주곡 형태로 널리 연주되지만 이번 공연에선 현악 5중주와 하프 독주를 위한 편곡으로 실내악적 분위기를 낸다.

마르셀 투르니에(1879~1951)는 하피스트 출신의 프랑스 작곡가로 하프 독주를 위한 연주회용 연습곡 '아침에' '영원한 꿈'등을 작곡했다.

"솔직히 하프 하면 맑고 깨끗한 음색에다 꿈결처럼 부드러운 이미지만 떠올리는 게 불만이에요. 특히 현대 작품 중엔 강렬하고 화려한 색채와 리듬을 요구하는 것이 많아요."

나씨는 이번 공연에서 빠른 템포의 춤곡으로 하프의 격정적인 측면도 들려주고 싶다고 말한다. 하피스트가 발레리나가 되어 다이내믹한 현대무용을 들려주겠다는 것이다.

"모음곡에선 악장마다 달라지는 음악의 표정을 강하게 부각시키려고 합니다. 프로그램을 관통하는 테마가 있어서 관객들도 부담없이 즐길 수 있을 거예요."

나씨는 97년 세계 정상급 플루티스트 제임스 골웨이(63)와 로웰 리버만의'플루트와 하프를 위한 협주곡'(RCA)을, 2000년 카운터 테너 안드레아스 숄과 우리 민요'새야 새야''아리랑'(데카)을 녹음했다.

또 99년 서울바로크합주단과 함께 카스텔누보 테데스코의 '하프 협주곡'을, 지난해엔 울산시향과 다마스의'하프 협주곡'을 각각 국내 초연했다. 02-751-9606.

◇하프=손가락으로 뜯어 소리를 내는 현악기. 자체 울림통을 갖고 있으며 페달로 현의 장력을 조절해 하나의 현으로 3개의 다른 음을 낼 수 있다.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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