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오 얀센의 기본을 돌아보게 하는 힘을 접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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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생. 한국 나이로 63세다. 눈부신 백발보다 더 마음을 끌었던 것은 얼굴에 부드럽게 번지던 선한 미소였다. 무작정 그의 외모를 예찬하는 것은 아니다. 물리학을 공부했던 그가 작가로 전향해 35년 동안 작업을 해온 것이 결코 녹록한 시간이 아니었을 텐데, 그러한 예측을 뒤엎는 온화한 미소를 확인하고 나니, 마음이 푸근해지더라. 1990년 그는 플라스틱 케이블을 뼈대로 삼고 바람을 동력 삼아 움직이는 생명체들을 탄생시켰다. 아니마리스 불가리스(1990~1991)를 시작으로 가장 최근 우메르스까지, 그가 고안한 해양 생물들은 고도의 계산을 토대로 설계되었다. 20년 동안 진화된 해양 동물은 물이 닿으면 즉각적으로 물을 피해 방향을 바꾸며 진행하는 지능까지 갖췄을 정도다. 이 움직이는 생명체엔 자동차의 엔진에 사용되는 배터리도 없고 컴퓨터 프로그램도 장착되어 있지 않다. 케이블, 나일론 끈, 빈 페트병 등이 전부다. 또 일일이 그의 손을 거쳐 만들어졌다. 작업 계획은 물론, 신체적으로도 힘든 작업이고 시간도 무척 오래 걸린다. 많은 조수를 써서 작업 지시를 내렸을 수도 있는데, 그것이 오히려 거추장스럽단다. 오랜 시간 동안 혼자 생각할 수 있는 기회란다. 첨단 기술 대신 자연의 법칙과 움직임의 원리가 깃든 해변 동물들. 과천 과학관 내부에서 이들의 빈 페트병에 바람을 넣어 이들을 움직이는 시범을 보면, 우리가 일상에서 치르고 있는 속도전을 되돌아보게 된다.

물리학자에서 화가로 전향한 후, 약 15년 동안 해온 작품 활동에서 움직이는 생명체를 낳아왔다. 그 도화선이 된 작품이 있었나? 컴퓨터로 지렁이 가족을 개발했고, 페인팅 머신(Painting Machine)과 플라잉 드릴(Flying Drill) 등 키네틱 아트라고 불릴 만한 작품을 만들어왔다. 작품을 끝낼 때마다 단계적으로 생각을 해왔다. 실망하는 것보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면서.

사실 일반인의 육안으로는 10년 동안 당신이 만든 생명체는 그 형태적인 차이만 구별할 수 있을 텐데. 예컨대 아니마리스 페르치피에레 프리무스와 아니마리스 페르치피에레 렉투스는 비슷한 원리이지만, 물리적으로는 차이가 있다. 이를테면 프리무스는 헤드가 너무 무거웠던 반면, 렉투스는 가볍다. 대신 형태와 움직임을 이루는 근육(튜브) 자체는 더 튼튼해졌다.

이들이 친환경 작품으로 부각되는 이유에는 플라스틱 튜브, 나일론 끈, 페트병 등 재활용품처럼 보이는 재료도 한몫한다. 20년 동안 한결같이 사용했는데, 이유가 있을까?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라는 것이 가장 큰 이유다. 플라스틱 튜브는 네덜란드에서 실제로 사용하는 케이블이다. 해변 동물이 존속하기 위해서는 20년마다 재료를 교체해줘야 한다. 오랫동안 이들과 함께 하다 보니, 내가 선택한 재료들이 무척 사랑스럽다. 꿈에서도 나타날 정도로.

사람들은 당신의 작품을 ‘키네틱 아트’라고 부른다. 장르에 대한 지칭을 떠나서, 당신의 작품은 왜 움직여야만 하는가? 이 거대한 형상이 살아 있는 것처럼 움직이는 동안 사람들이 많은 영감을 받았으면 한다. 작품을 해변에 놓고 스스로 움직이게 하는 동안, 사람들은 이 생명체를 건드리지 않고 오히려 보호하려는 것을 지켜보았다. 작품뿐만 아니라 다른 자연의 생명체도 지켜질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을 얻었다.

BMW의 남아프리카 공화국 광고를 통해 “예술과 공학 사이에 있는 장벽은 우리 마음에서만 존재한다”라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당신의 이력상, 예술과 공학 사이에서 어떤 갈등을 하던 시기가 있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학교에서 교육을 할 때나 그렇게 구분을 짓는다. 에스키모들이 자신들의 삶에서 필요한 카약을 만들 때 자신의 작업이 어떤 예술이라는 범주 안에 들 거라거나, 어떤 테크놀로지 안에서 움직인다고 생각을 하겠는가? 아트나, 공학이나 사실 같은 거라고 생각한다. 내 작업의 시초는 애초에 에스키모의 생각과 같은 뜻에서 이뤄진 작업이다.

앞으로 당신의 작업을 통해 사람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은가? 뭔가를 해야만 한다는 메시지를 심어주거나 계몽하고 싶은 의도는 애초에 없었다. 다만 해변 동물을 계기로 더 많은 사람과 자연에 대한 존중을 공유할 수 있다면, 새로운 느낌을 받을 수 있다면, 만족한다.

<테오 얀센-살아 있는 거대 생명체>전 10월 17일까지 국립 과천 과학관 문의 1566-0329

기획_한지희
슈어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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