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서해도발]이회창 "강력 대응이 도발막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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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북한의 서해 도발에 대해 한나라당 이회창(會昌)대통령후보는 정부의 강력한 대응을 연일 촉구하면서도 군 지휘라인의 책임자 문책에 대해선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후보는 휴일인 1일 당의 대책회의를 직접 주재했다. 회의에서 그는 "마치 한반도에 전쟁위협이 없어진 것처럼 착각하지만 이번 사건을 반성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며 "김정일(金正日)정권에 대해 강력한 경고를 분명하게 전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후보는 "북측의 빈번한 월경(越境)을 경고나 밀어내기로 수습하려 했던 정부의 안일한 태도가 이번에 습격당한 것"이라며 "북한의 무력도발을 막는 유일한 방법은 강력한 대응"이라고 강조했다. 햇볕정책의 전면 재검토도 필요하다고 밝혔다. 전날 금강산 관광사업의 일시 중단을 주장한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이다.

한 당직자는 "후보가 국가 위기상황에서 분명하고 단호한 입장을 밝힌 것은 수권능력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며 "결국 후보의 전략적 상호주의가 옳았다는 게 이번 사건으로 입증된 셈"이라고 설명했다.

후보의 이같은 입장정리에는 8·8 재·보선 후 정계개편을 통해 자민련과 민주당 일각, 미래연합 등을 포함하는 보수신당이 결성될 가능성에 대한 고려도 담겨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후보의 주변에선 "이번 기회에 대북정책의 난맥상을 쟁점화해 권력비리 의혹과 함께 양대 이슈로 만들 것"이라는 얘기들이 나왔다. 한 측근은 "서해교전은 현 정부의 대북정책이 명백하게 실패했다는 것을 입증하는 사례"라며 "보수층 결집과 우리당의 젊은층 유권자 공략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주요 당직자들의 목소리 역시 강했다. 서청원(徐淸源)대표는 "금강산 관광, 민간 교류, 첨단기술 이전,경협 등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회의에선 즉각 '6·29 서해 무력도발 진상조사 특위'를 만들자는 결정도 이뤄졌다. 하지만 군 책임자 문책 문제에 대해선 조심스러워했다. 박세환(朴世煥)의원 등이 김동신(金東信)국방부장관·이남신(南信)합참의장의 문책을 거론하자 남경필(南景弼)대변인은 "당론이 아니다"고 발표했다. 이는 후보의 지시에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당직자들은 회의에서 후보가 "사태의 전말이 안 밝혀진 데다 안보에 관한 것은 정쟁이나 정략의 대상이 아니므로 초당적 협력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한 사실을 환기했다.

이같은 태도는 이번 사건의 역풍까지 고려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한 당직자는 "국가 안보문제를 정치적으로 악용하려 한다는 인상을 주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게 후보의 생각"이라고 말했다. 또 이는 젊은층과 개혁층도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최상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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