③·끝<우쭐대다간 '1회성 돌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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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시리즈순서>

① 달라진 한국 축구

② 대회 운영도 이만하면

③ '히딩크 이후'가 문제

사우디아라비아는 1994년 미국월드컵에서 2회전(16강전)에 진출했다. 그러나 불과 4년 뒤인 98년 프랑스 월드컵 때는 지역예선에서 탈락하더니 이번엔 독일에 0-8로 대패하는 등 3전 전패로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다.

94년 당시 사우디는 왕실의 지원 아래 아르헨티나 출신 명장 호르헤 솔라리를 영입해 성과를 거뒀다. 한국 역시 거스 히딩크 감독을 영입한 지 1년6개월 만에 큰 성과를 거뒀다. 그런 점에서 사우디의 몰락은 '포스트 히딩크'를 준비하는 한국 축구엔 '타산지석'이다. 월드컵이 끝난다는 것은 다음 대회가 시작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폐막과 동시에 각국은 지역예선을 비롯한 다음 대회 준비에 돌입한다.

◇히딩크가 남긴 교훈

히딩크 감독의 성공 원동력 중 가장 중요한 것은 가능성 큰 선수를 선발해 체력이라는 기초를 다진 점이다. 히딩크 감독은 취임 이후 1년 동안 선수들을 찾아다녔다. 그동안 히딩크호를 거쳐간 선수만 60여명. 히딩크 감독은 선수의 명성과 출신학교 대신 가능성을 살폈다. 그렇게 해서 선발된 김남일·박지성·송종국·이을용·최진철 등은 이번 대회 내내 최고의 활약을 보였다.

히딩크 감독은 체계적인 '파워 프로그램'을 통해 이들의 체력을 끌어올렸다. 압박축구와 콤팩트 축구의 바탕이 된 것은 이렇게 길러낸 체력이었다. 히딩크 감독이 남긴 또 다른 교훈은 '겪은 만큼 성장한다'는 것이다. 히딩크 감독은 여러차례에 걸쳐 "쉬운 길도 있었지만 험한 길을 택했다"고 밝혔다. 눈 앞의 성과에 집착하지 않고 프랑스·잉글랜드·체코·크로아티아 등 세계 정상의 팀들과 맞붙었다. 그 덕분에 우리의 문제점을 제대로 볼 수 있었고, 강팀들에 대한 두려움도 떨쳐버릴 수 있었다. 축구협회는 조만간 히딩크 감독 1년반을 담은 백서를 발간할 계획이다.

◇지도자 양성이 시급

에메 자케 전 프랑스 대표팀 감독은 지난 2월 파주 축구대표팀 트레이닝센터(NFC)를 방문해 "좋은 선수를 발굴하는 것 못지 않게 중요한 일은 좋은 지도자를 키워내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히딩크 감독이 이번 대회를 통해 거둔 성공은 지도자의 중요성을 여실히 보여준 사례였다. 몇년 전까지도 축구협회에서 실시하는 지도자 자격 코스는 은퇴 선수들에게 자격증을 주기 위한 형식에 그쳤다. 하지만 실전경험만으로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팀 전술운용부터 훈련계획을 세우는 것까지 '선수의 일'과 '지도자의 일'은 전혀 다르다. 최근에는 자격증을 딴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보수교육을 받도록 해 지도자의 수준은 유지하지만, 선진 축구를 경험할 기회는 여전히 적다.

박성화 청소년대표팀 감독은 "지도자 스스로 경험하지 못한 선진축구를 어떻게 선수들에게 가르칠 수 있겠느냐"며 "우수한 지도자를 초빙해 선수가 아닌 지도자를 가르치도록 하자"고 제안한다.

박감독은 "1년반 외국에서 축구유학을 했지만 경제적 부담이 만만치 않았다"며 "국제축구연맹(FIFA)의 지도자 파견 프로그램 등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양한 시각도 필요

월드컵을 앞두고 시행했던 우수선수의 해외진출 프로젝트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그러나 선수들의 꾸준한 해외진출이 필요하다는 점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문제는 선수의 수준에 맞는 해외리그 선택이다. 이동국과 설기현의 엇갈린 희비가 바로 여기에서 출발한다. 히딩크 감독은 지난 28일에도 "한국 축구가 더욱 발전하기 위해서는 선수들이 자신의 수준에 맞는 해외리그로 꾸준히 진출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표선수 선발 방식도 달라져야 한다. 바로 히딩크 감독 성공의 원천이 선수 선발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대표선수는 상비군이라는 일종의 인력풀(pool)에서 선발했다. 그러나 히딩크 감독은 선발의 폭을 상비군에서 한국 축구 전체로 확장했다.

박성화 감독도 "상비군에 의존할 경우 선수에 대한 편견이 생기는 동시에 선택 폭도 제한돼 새로운 얼굴을 찾기 어렵다"며 "시간이 걸리더라도 꾸준히 테스트를 해보고 선발했던 히딩크 감독의 방식이 결국은 선수들의 경쟁까지 유도하면서 성공을 거뒀다"고 평가했다.

장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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