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호나우두 "황제의 이름으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9면

후반 45분 벤치로 물러난 호나우두(26·인터밀란)는 경기가 아직 끝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흐느끼며 울었다.

4년 전의 악몽을 깨끗이 털어버린 결승전 두 골. 비로소 세계 최고의 스트라이커라는 명성에 걸맞은 활약을 하며 브라질을 통산 다섯번째 우승으로 견인한 기쁨이었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 결승전. 준결승까지 네 골을 기록하며 승승장구하던 그였지만 정작 프랑스와의 결승전에선 부진을 면치 못했다. 당시 스물두살의 호나우두에겐 대회 최우수선수(MVP)로 뽑힌 기쁨보다 팀이 0-3으로 참패한 아픔이 더 컸다.

폭발적인 스피드와 현란한 드리블은 물론 찬스를 놓치지 않는 골 결정력까지, 축구에 필요한 모든 것을 갖춘 그가 '축구 황제'의 칭호를 얻지 못하고 '축구 천재'에 머물렀던 것은 결승전 부진 때문이었다.

그리고 4년 후, 돌아온 호나우두는 이제 황제로 불리기에 손색이 없었다.

터키와의 조별리그 1차전 선제골에 이어 중국과의 2차전에서 추가골을 터뜨린 뒤 "매 경기 골을 넣겠다"고 감히(?) 다짐했던 그였다. 코스타리카와의 3차전에서 두 골을 기록한 호나우두는 벨기에와의 16강전에서도 골을 추가하며 득점왕을 향한 쾌속항진을 거듭했다.

비록 잉글랜드와의 8강전에서 골을 넣지 못해 약속을 지키지 못했지만 터키와의 4강전에서 다시 결승골을 터뜨리며 브라질을 결승까지 끌어올렸다. 독일과의 결승전에 나선 호나우두는 4년 전의 그가 아니었다. 후반 22분, 독일 골키퍼 올리버 칸이 히바우두의 왼발슛을 놓치자 문전으로 쇄도하며 오른발 인사이드로 가볍게 골을 성공시켰다. 이번 대회 일곱번째 골. 78년 아르헨티나 대회 이후 24년간 깨지지 않았던 '6골 득점왕' 징크스를 깨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배가 고팠다.

후반 34분 클레베르손의 크로스를 받은 그는 철벽 수문장 칸이 다이빙을 해도 막지 못할 오른쪽 코너를 향해 정확한 슛을 날렸다.

호나우두는 이번 대회 일곱 경기에서 여덟 골을 터뜨리며 득점왕에게 주어지는 골든 슈를 수상했다. 경기당 평균 1.14골. 뿐만 아니다. 호나우두는 2일 발표할 예정인 골든볼(MVP)에도 강력한 후보다. 월드컵 최우수선수 2연패가 눈에 보이는 것이다. 그는 또 두 대회에서 통산 12골을 기록, 펠레가 보유 중인 브라질 출신선수 최다골(12골)과 동률을 이뤘고, 게르트 뮐러(독일)가 수립한 월드컵 개인 최다골(14골) 기록에도 바짝 다가섰다.

76년 브라질의 빈민가에서 태어난 호나우두는 네살 때 축구공을 차기 시작했고, 93년 남미 축구대회에 브라질 대표로 출전해 득점왕(8골)에 올랐다.

호나우두는 이후 브라질 명문 크루제이루로 이적, 93~94시즌 54경기서 54골을 뽑아낸 뒤 94년 미국 월드컵 대표로 선발됐으나 주전경쟁에서 밀려 그라운드를 밟지는 못했다.

94년 네덜란드 아인트호벤, 96년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이어 97년 이탈리아 인터밀란으로 이적한 호나우두는 99년 말 무릎 부상으로 선수생활이 중단될 위기를 맞기도 했다. 그러나 2년간의 재활훈련 끝에 화려하게 재기, 2002 한·일 월드컵에서 명실상부한 축구황제의 등극을 세계에 알렸다.

정제원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