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으로부터의 질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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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매스게임이나 군대의 행진에서는 그 전체가 아무리 조직적으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하여도 그것이 그 구성원들의 질서의식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다. 이와 달리 여러 갈래의 길이 있는 곳에서의 원활한 소통은 시민의 질서 의식 없이는 불가능하다. 이는 자발적으로 교통법규와 신호를 지키는 자기 통제가 가능한 구성원에 의해서만 이뤄지기 때문이다. 그것은 미리 써진 각본에 따라 움직이는 것과는 구별된다.

자연계에서도 혼돈과 질서의 의미를 찾아볼 수 있다. 닫힌 계의 엔트로피가 감소하지 않는다는 것을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닫힌 계가 최대 엔트로피 상태에 이르게 되면 더 이상의 질적인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프리고진은 이를 평형 구조라고 불렀다. 이와 대비되는 것이 산일 구조(dissipation structure)인데, 이는 최대 엔트로피에 이르지 못한 상태이므로 불안정하게 변화해 가는 구조를 말한다.

산일 구조에서 계의 요동이 있을 경우, 그 요동의 정도가 경미하면 계가 이를 흡수하며 이에 따라 요동의 진폭은 점차 줄어든다. 그러나 요동의 강도가 점점 심해지면 계는 마침내 요동을 흡수할 수 있는 한계에 도달하게 된다. 이를 넘어서는 경우, 요동이 점차로 증폭되다가 마침내는 이전의 체계가 무너지고 새로운 구조가 나타난다.

예를 들어 물이 들어 있는 용기에 약간의 열을 가하면, 물분자 운동이 조금 활발해지다가 이전의 상태로 돌아간다. 그러나 어느 정도 이상의 열을 지속적으로 가하게 되면 다음의 두 단계가 나타난다. 처음에는 물분자가 이전보다 더욱 활발한 운동을 하는 상태에 이른다. 그것은 혼돈의 상태다. 이 상태에서 조금 더 열을 가하면 물의 대류라는 새로운 구조가 나타난다. 그것은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질서다.

이는 요동이라는 혼돈의 상태를 통해 새로운 질서가 창출될 수 있다는 것을 물질계에서 확인한 작업이었다. 프리고진은 이를 "혼돈으로부터의 질서"라고 했다. 열이 가해지지 않은 물은 혼란스럽지는 않지만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 정태적인 체계다. 그것은 죽음의 세계다. 이와 달리 대류라는 구조는 활발한 움직임 속에서 이뤄지는 역동적인 질서다. 그것은 생명의 세계다.

사회에서도 권위에 대한 맹신이나 외부의 명령으로 어떤 일이 진행된다면 그 이상의 어떤 변화도 새롭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혼란스럽지 않을지는 모르지만 발전도 기대할 수 없는 사회다. 이와 반대로 자유와 자율의 바탕 위에서 이뤄지는 행위는 처음에는 혼란스러워 보일지 몰라도 새로운 가능성을 그 안에 품고 있다.

우리 세대는 외국 대통령이 왔을 때 영문도 모른 채 거리에서 태극기를 흔들었던 것을 기억한다. 신동엽은 이를 "화창한/ 가을, 코스모스 아스팔트가에 몰려나와/ 눈먼 깃발 흔든 건/ 우리가 아니다"라고 했다. 우리가 흔든 게 아니라 누군가의 명령으로 동원된 것이니까. 하지만 우리가 6월의 거리에서 본 태극기는 눈먼 깃발이 아니라 자율적 참여와 자기 통제의 깃발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혼돈의 과정을 거친 생명의 질서이기도 했다. "샘물 같은 동방의 눈빛"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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