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기다렸다는 듯 6자회담 제의 … 정부는 “냉각기 필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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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유엔 안보리에서 천안함 공격 규탄 의장성명이 채택된 지 하루 만에 북한이 6자회담 복귀를 시사하는 듯한 입장을 밝힌 데 대해 정부 고위 당국자가 내놓은 반응이다.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10일 “우리는 의장성명이 조선반도의 현안 문제들에 대해 직접대화와 협상을 재개해 평화적으로 해결할 것을 장려한다고 한 데 유의한다”며 “6자회담을 통해 평화협정과 비핵화 실현 노력을 일관하게 기울여 나갈 것”이라 밝혔다고 조선중앙통신이 전했다. 북한이 그동안 안보리에서 천안함 문건을 채택하면 “초강경 대응”을 할 것이라고 경고해온 것에 비하면 상당히 온건한 내용이란 평가다. 한편 친강(秦剛)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10일 "가급적 신속히 천안함 사건을 매듭짓길 희망한다”며 "조속히 6자회담이 재개돼 한반도 평화 안정을 공동으로 수호할 수 있게 되기를 촉구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정부는 “(북한의) 이번 발언이 진정성을 가졌는지 검증될 때까지 냉각기간이 필요하다”며 일단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안보리 처리는 일단락됐지만, 한·미 연합 해상훈련과 금융제재 등 당초 예정했던 대북조치들을 이어가면서 북한이 천안함 사건을 사과할지, 비핵화 의지를 어느 정도 보일지 등을 지켜본 뒤 6자회담 재개 등 ‘천안함 출구전략’을 본격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유엔 주재 수전 라이스 미국대사(오른쪽)와 박인국 한국대사가 9일 천안함 공격을 규탄하는 안보리 의장성명이 채택된 후 인사를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정부 당국자들은 “미국과 일본도 우리와 같은 입장”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상징적 조치에 불과한 의장성명이 채택되자마자 북한에 실효적인 책임을 묻지도 않고 6자회담을 재개해 천안함 사건을 덮어버릴 순 없다는 데 한·미·일의 생각이 일치한다는 것이다. 천안함 사건을 놓고 조만간 열릴 유엔사-북한군 간 영관급 실무회담이 북한의 의중을 판단할 시금석이 될 것으로 당국자들은 보고 있다. 북한은 천안함 사건에 대해 해명 기회를 주겠다는 유엔사의 지난달 26일 제안을 거부했던 기존 입장을 번복하고, 북·미장성급회담 북측 단장 명의의 통지문을 9일 보내 사전 접촉을 갖자고 제안했다.

정부는 북한의 반응이 나온 지난 주말을 기점으로 천안함 사건을 적절한 시점에 매듭짓고 비핵화 논의의 주도권을 잡기 위한 수순에 돌입했다는 게 정부 안팎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정부 고위 당국자가 11일 기자들에게 “동북아에 이해관계를 가진 모든 나라가 천안함 사태에서 벗어나 정상적 상황으로 가는 게 중요하다”며 “북한도 국면을 전환할 수 있는 이번 기회를 잘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한 건 이런 맥락에서다. 그는 “북한을 너무 자극하지 않고 퇴로를 열어줄 필요가 있다”고도 말했다. 이에 따라 정부 일각에선 한·미 연합 해상훈련의 장소·규모와 미국이 검토 중인 금융제재 시기를 재조정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천안함 출구전략의 큰 그림은 이달 21일 서울에서 예정된 한·미 외교·국방 장관(2+2) 회담에서 나올 가능성이 있다.

문제는 북한의 태도다. 6자회담 의장국인 중국은 의장성명 채택을 명분으로 회담 재개를 서두를 가능성이 크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천안함 의장성명 채택은 미·중이 6자회담 재개를 놓고 타협한 결과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럼에도 당장 북한이 유엔사와의 회담에서 천안함 사과를 거부하고 제재 해제나 평화회담 개최 등 기존 주장만 되풀이한다면 한·미·일이 6자회담 재개에 동의하긴 어려워진다. 결국 정부의 국내외 정책 전환의 기점으로 예상되는 8·15까지는 한·미·일-북한-중국 간에 천안함과 6자회담 재개 문제를 놓고 공방이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고 전문가들은 전망한다.

강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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