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문 자랑 뛰어넘은 문중史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붉은 악마'라는 거국적 응원을 보며 세계가 놀라고 있다. 그러나 한국인은 누구나 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 이처럼 우리가 강한 민족공동체 의식을 갖고 있는 배경에는 사실 혈연, 역사적으로는 문중(門中)이라는 공동체 의식이 거미줄처럼 엮어져 있는 것에서 비롯된다.

최근 안동의 명문 의성(義城) 김씨 내앞(川前)파에서 개창조(開創祖)인 청계(靑溪) 김진(金璡·1500~1580)의 탄생 5백주년을 맞아 성격을 달리하는 3권의 책을 세상에 펴낸 것은 이런 의미에서 주목된다.

내가 의성 김씨 내앞파에 처음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청계의 사당이 있는 내앞 종택(宗宅)의 건축이었다. 일찍이 보물 4백50호로 지정된 이 양반집은 우리나라 전통가옥 중에서 공간운영이 탁월한 건축으로 높이 평가되고 있다. 청계의 넷째 아들인 학봉(鶴峰) 김성일(金誠一·1538~1593)에 의해 설계된 것으로 알려진 이 집은 특히 사랑채가 사랑방의 기능과 함께 제의(祭儀) 공간을 겸하게 설계함으로써 그 위용이 어느 양반집보다도 당당하다.

안동시내에서 안동대학교 쪽으로 가다보면 나오는 내앞 종택(宗宅)은 오늘날 임하댐 건설로 반변천의 흐름이 바뀌는 바람에 자연경관이 변형되었지만 멀리 섬으로 되어버린 솔밭과 함께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강변마을에 있다. 풍수로 말하자면 이중환이 『택리지』에서 계거(溪居)의 명당으로 지목한 바 있는 최상의 양택(陽宅)이다.

그런 덕인지 청계의 아들 5형제는 모두 과거의 대소과에 급제하여 오자등과댁(五子登科宅)이라는 영광을 안으며 이 집안을 크게 일으켰다. 이 번에 출간된 3권의 책들 중 가장 호화판으로 간행된 것은 청계와 다섯 형제의 전기를 엮은 『청계선생6부자전』이다. 두 번째 책은 이들 6부자의 문집인 『연방세고(聯芳世稿)』를 원문과 함께 한글로 번역한 책이다. 이는 청계 6부자가 당당한 문인이었음을 말해주는 하나의 물증인데 대산(大山) 이상정(李象靖)이 서문에서 말한 것처럼 이런 일은 수백 대(代)만에 한 번이나 있을 일이다.

그리고 세 번째 책은 『내앞 5백년』이라는 제목의 종합연구논문집이다. 역사학자 조동걸(趙東杰), 이수건(李樹健), 민속학자 정진영(鄭震英), 지리학자 김덕현(金德鉉) 등의 중후한 논문으로 구성된 이 책은 의성 김씨 내앞파의 문호 형성과 건축적 환경기획, 정치적 활동과 독립운동의 구체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낱낱 논문들의 내용을 보면 문중 사람들이 오직 조상을 위하여, 또는 조상을 욕되지 않게 하기 위하여 얼마나 행동에 제약을 받았는가가 절절히 배어 있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굴레이고 한편으로는 자존심의 근원이기도 했다.

가만히 생각건대, 한 집안의 자손이 5백년을 두고 같은 자리에서 대를 이어가며 살면서 그 방대한 혈연을 문중이라는 이름으로 오늘날까지 결속시키고 있다는 것은 스스로도 놀랄 만한 일이다. 이런 일이 서양의 어느 귀족 명문엔들 있을까. 더욱이 이와 같은 집안이 안동에만도 10여 가문이 있고, 전국에 수십·수백으로 퍼져있으니 그것을 모르고는 한국사회, 한국역사의 심연을 바라볼 수 없는 일인 것이다.

책이 이루어진 형식은 의성 김씨 내앞파의 문중사학(門中史學)이지만 그것이 갖는 사회적 의미가 가문을 뛰어 넘어 국학(國學)의 한 성과로 생각되는 것은 이런 까닭이다.

문의 02-738-2207.

유홍준<명지대 교수·미술사학과>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