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4명은 누구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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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1980년대 말 해금된 임화·오장환·이용악·백석은 교과서에 등장하는 시인들이 아니다. 시문학사의 큰 이름, 그러나 아직도 낯설게 다가오는 이들의 입문서로 안성맞춤인 책은 MBC '!느낌표' 소개 뒤 베스트셀러로 뜬 신경림의 『시인을 찾아서』(우리교육)다.

이중 임화는 해방 직후 조선문학가동맹을 주도했던 당대의 문학권력. 최고의 이론가로 통했던 임화의 흔적은 서울 곳곳에 있다. 시 '길'에서 "호올로 돌아가는/길가에 밤비는 차가워/걸음 멈추고 돌아보니/회관 불빛 멀리 스러지고"라 했던 문학가동맹 회관은 종각 바로 옆이다.

백석은 평북 정주 출생. 조선일보 기자로도 활동했고, 월북 뒤 곧바로 절필한 뒤 최근(1995년)까지 살았으니 우리는 그와 동시대인인 셈이다. 어쨌거나 백석은 우리 현대시사 최고봉. 그의 깔끔한 사생능력은 초여름 산골풍경을 단숨에 스케치해낸 3행짜리 단시(短詩)에서도 보인다. "산뽕잎에 빗방울이 친다/멧비둘기 난다/나무등걸에서 자벌기(애벌레)가 고개들 들었다 멧비둘기 켠을 본다"('산 비' 전문)

서정주와 함께 '시인부락' 동인으로 활동했던 오장환과 이용악은 일제 말의 청년 재사(才士)들이었다. 신경림이 '낭만과 격정의 민중시인'이라고 이름 붙였던 오장환의 고향은 충북 보은. 하지만 첩의 아들이었던 그는 성장 뒤 고향을 외면했다. 서정주의 처녀시집 『화사집』을 호화롭게 출판해준 것도 바로 그였다. 함북 출신 이용악은 빼어난 시 '오랑캐꽃'만으로도 오래 기억될 만하다. 이 시는 현실인식과 서정미가 훌륭하게 결합돼 있다는 평가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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