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본> 시험·처벌 없는 학교-도쿄슈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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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등교시간요? 일어나는 시간에 맞춰 가요. 보통 오전 10시쯤 일어나 11시쯤 도착해요. 등교하지 않아도 학교에서는 뭐라고 하지 않지만 재미있어 학교에 가요."

이렇게 말하는 아베 아유미(失部愛弓·13)는 이지메(집단 괴롭힘)때문에 초등학교 5학년 때 학교를 그만둔 후 지금은 도쿄(東京)신주쿠(新宿)구 와카마쓰(若松)초에 있는 '도쿄슈레'에 다니고 있다. 도쿄슈레는 정규교육을 포기한 학생, 이른바 '후도코(不登校)학생'들을 위한 대안(代案)학교다. 학력이 인정되지는 않는다.'슈레'는 '자유로운 정신을 발휘한다'는 뜻으로 그리스어에서 따온 말.

일본교육의 고민 가운데 하나는 이지메·학교 부적응·개인성격 등의 이유로 공교육을 포기하는 초·중학생이 매년 크게 늘고 있다는 점이다. 2000년에는 사상 최고인 13만4천명을 기록, 1991년(6만6천여명)의 2배 이상으로 불어났다.

일찍이 문제의 심각성에 눈을 뜬 일본 학부모들은 자발적으로 등교거부 문제의 해결을 모색해 왔다. 17년 전 특정 비영리법인(NPO)으로 문을 연 '도쿄슈레'가 대표적인 예다.

현재 도쿄도 내 신주쿠·오지(王子)·오타(大田) 등 세곳에 학교를 운영하고 있는 도쿄슈레에는 6~20세 학생 2백명이 다니고 있다. 이 학교에는 교칙·시험·처벌·졸업 개념이 없고, 자유·자치·개인존중이 교육이념이다. 수업시간표가 있지만 학생이 합의하면 언제라도 바꿀 수 있다.

지난 21일 오후 와카마쓰초 도쿄슈레를 방문했을 때 탁구를 하거나 응원하고 있는 청소년들, 컴퓨터에서 열심히 인터넷 검색 중인 여학생, 사무실 구석에 펼쳐진 이불 위에 널브러져 책이나 만화를 읽고 있는 청소년들이 눈에 들어왔다. 쉬는 시간인줄 알았더니 수업 중이었다.

오쿠치 게이코(奧地圭子)도쿄슈레 이사장은 "학생들의 무책임·무질서를 걱정하는 사람도 있지만 학생들은 오히려 자주적으로 행동하고 사회에 적응하는 습관을 배운다"고 강조했다. 도쿄슈레는 매주 금요일 학생·교사가 모여 1시간 동안 주요 사안을 논의·결정한다.

학생들의 반응은 좋은 편이다. 매일 70~80%가 등교한다. 아사오카 류스케(淺岡佑輔·15)는 "중학교 1학년 때 흥미를 잃어 학교를 포기했는데 여기서 내키는 대로 하다보니 수학에 관심이 생겼다"고 말했다. 아베는 "국회의원이 돼 나같은 학생들을 위해 일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이 학교 졸업생을 주축으로 3년 전에는 격주간지 '후도코(不登交)신문'이 창간돼 최근 지령 1백호를 맞았다. 전국에 5천여부가 우편 배달되는데 작가·의사·교수·변호사·종교인 등 15명이 편집고문을 맡고 있다."중학교 때 학교의 구속이 싫어 그만뒀다"는 이시이 시코(石井志昻·20)기자는 "우리도 나름대로 이유와 인생이 있고, 특별한 일도 아니다"라며 "슬기롭게 세상을 살기 위해 서로 정보를 공유하고, 우리 입장을 사회에 전달하는 데 힘쏟고 있다"고 말했다.

도쿄슈레는 인터넷·잡지 등으로 6백여 가정에 교육기회를 제공하는 '홈슈레'나 '대학슈레'를 만드는 활동을 확대하고 있다.

오쿠치 이사장은 "세상은 갈수록 개방화하는데 학생들을 학교에 강제적으로 맞추려는 것이 공교육의 문제"라며 "학생들의 인격과 의지를 존중하는 교육풍토가 정착돼야 학교거부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말했다.

도쿄=오대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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