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사설] ‘축구의 신’은 공정하다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174호 02면

서양의 문학작품이나 공연작품에는 “오 신(神)이시여…”라는 탄식이 나올 때가 있다. 신(神)이 전지전능(全知全能)하다면 세상에는 왜 불의가 있을까.

‘축구의 신’이 있다면 그는 공정할까. “축구 공은 둥글다”는 말처럼 의외의 결과가 나오기도 하지만 내일 새벽 월드컵 결승에서 마주칠 스페인과 네덜란드의 면모를 보면 ‘축구의 신’은 공정한 것 같다. 스페인(피파 랭킹 2위)은 2008년 UEFA 유럽챔피언십에서 우승한 유럽 최강이다. 스페인 국가대표팀은 2007~2009년 35경기 무패 행진을 이어갔다. 브라질과 타이 기록이다. 네덜란드(피파 랭킹 4위)는 월드컵 예선부터 본선까지 14연승을 달리고 있다.

‘축구의 신’의 정의 실현에는 시차(時差)가 있다. 네덜란드와 스페인은 지금까지 “오 신이시여” 할 때가 참 많았다. 무적함대 스페인은 1950년 4강 진출이 최고 성적이었다. 스페인은 2008년 7월 피파 랭킹 1위를 차지한 여섯 번째 국가가 됐는데 월드컵에서 우승하지 못하고 1위가 된 유일한 경우였다.

네덜란드도 억울하기는 마찬가지다. 네덜란드는 70년대에 ‘전원 수비, 전원 공격’으로 요약할 수 있는 ‘토털 축구’를 고안해 현대 축구 전술의 틀을 새로 짰다. 그런 네덜란드지만 74, 78년 월드컵에서 2위에 그쳤다. 그뿐인가. 막강한 전력에도 불구하고 네덜란드는 58년 이래 월드컵 본선에 나가보지도 못한 게 7회나 됐다.

스페인·네덜란드의 결승 진출이 사필귀정(事必歸正)이라면 한국의 경우는 어떤가. 물론 태극전사들의 땀과 전 국민의 응원으로 16강에 진출했다. 그러나 ‘축구의 신’은 어쩌면 한국을 편애하고 있는지 모른다. 우리는 월드컵에 8회나 진출했으며 피파 랭킹 47위임에도 불구하고 13위 그리스를 이기고 21위 나이지리아와 비겼다.

‘축구의 신’의 가호(加護)에 마냥 기댈 수만은 없다. 프로축구단이 죽어가고 K-리그는 혼수상태라는 진단이 나오고 있다. 반면 일본 프로축구에서는 최근 사상 최대의 배당금을 구단에 지급했다. 오늘의 한국 축구가 있게 한 K-리그에 생기를 불어넣어야 한다. 별다른 K-리그 대책을 세우지 않고도 다음 월드컵까지는 괜찮을지 모른다. 행위에 대한 결과는 훗날 언젠가는 받게 된다는 인과응보(因果應報)론을 상기하자. 62년에서 82년 월드컵까지 우리는 내리 6회 본선 진출에 실패했다. 최초의 골, 최초의 승리, 최초의 원정 16강은 또 얼마나 힘들었는지도 기억하자.

불교에 인과응보론이 있다면 그리스도교에는 세상에 악이 존재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신정론(神正論·theodicy)이 있다. 악이 존재하는 이유는 보다 큰 선(善)을 위해서라는 신정론의 설명도 있다. 억울한 일이 축구장에서 발생하는 이유는 ‘축구의 신’이 우리에게 더 큰 재미를 선사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