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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농업 보호벽 쳐놓고 EU내 分業化 가속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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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곡물 가격은 프랑스 남부가, 채소 가격은 네덜란드가 좌우한다.이에 따라 독일 시장에서도 지난 10년간 농산물 가격이 조금씩 떨어지고 있다."

독일 베를린 청과물 도매시장의 디터 크라우스 사장은 이렇게 말하면서 "시장에서 팔리는 청과물의 80% 이상이 남부유럽·아프리카 등 세계 각지에서 온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일의 농업이 파산하진 않았다. 독일 농업지역인 브란덴부르크주의 경우 농민수는 10년 전에 비해 5분의1 수준으로 줄었지만 경작지는 줄지 않았다. 브란덴부르크주 농업성 칼 하인스 그로스코프 박사는 "농업 경쟁력을 유지하는 것은 정부의 정책의지에 달렸다"며 "자유무역협정과 같은 정책은 유한하지만 미래 식량안보 차원에서 경작지를 유지하기 위해 지원금을 주고, 경쟁력을 잃은 밀·감자 등은 다른 작물로 전환하는 농업정책을 펴고 있다"고 강조했다.

농업 현장에선 이와 함께 농업의 기업화를 통한 효율 높이기가 한창이다. 브란덴부르크주 베르더 지방에서 청과물 재배 및 유통업을 하고 있는 베르더 푸르크트사는 지난해 사과재배단지 9㏊를 새로 조성했고 올해는 20㏊를 더 만들 계획이다.

이 회사는 또 이 지방 다른 농가에서 과일을 사들여 베를린에 파는 등 유통에도 앞장선다. 과수의 키를 낮추고 나무에 자동으로 물을 주는 시스템을 만들어 9㏊짜리 과수원을 한 사람이 관리하도록 하는 등 지능형 농업도 도입했다.

이 회사 재배부문 매니저인 베루드 폴크만은 "값싼 외국산 농산물 때문에 한때 경작지가 줄어드는 등 혼란도 있었지만 지금은 해답을 찾아냈고, 농업은 결코 사양산업이 아니다"고 말했다.

반면 전형적인 농업국가였던 포르투갈은 또 다른 길로 가고 있었다.

"감자와 곡식은 프랑스 남부에서, 채소와 과일은 스페인에서 대부분 수입해서 먹고 있습니다." 포르투갈 산업협회 뤼 마달레노 국장은 "포르투갈은 이제 농업국가 간판을 내려야 할 것"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포도주와 코르크를 빼곤 시장서 자국산 채소조차 찾기 힘들어졌다는 것이다. 농가수는 1989년 1백97만 가구에서 10년만에 1백23만 가구로 37.6%가 줄었고, 경작지도 4백만㏊에서 3백86만㏊로 줄었다.

포르투갈 농업성 애나 카리호 담당관은 "EU의 농업지원금을 주먹구구로 쓰면서 변변한 농업정책도 없이 표류해 농업경쟁력을 잃었다"고 말했다.

그도 역시 자유무역지대에서의 농업경쟁력은 시장원리가 아니라 정책으로 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공산품에는 완전 자유무역을 도입한 EU당국도 농업만은 여러가지 보호장치를 두고 있다.동구의 준회원국들과 자유무역을 하지만 농산물만은 관세 등으로 제한하고 있다. 때문에 90년대 EU가입협상이 시작되면서 동구 유럽의 싼 농산물이 남부 유럽의 농산물을 급속히 대체할 것이라는 우려는 실제로 나타나지는 않고 있다. 이에 동구 국가들도 새로운 살길을 찾고 있다. 농업국가인 헝가리는 역외국의 EU전진기지로서의 위치를 이용해 헝가리에 생산공장 진출이 활발한 역외국가들을 상대로 농업시장 개방을 강조한다.

농업성의 에바사라 마그야리 국제담당관은 "올 가을 한국에서 열리는 식품박람회에 육가공품 등을 들고 참가할 계획"이라며 "헝가리와 교류가 있는 많은 역외국 시장에 헝가리 농산물을 파는 데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EU당국은 이밖에도 농산물 가격 경쟁을 막기 위해 최저가격제도를 도입하고, 값싼 국제농산물이 들어와 가격을 교란시키지 못하도록 역내 생산물 우선권제도를 도입했다. 역외국 농산물에는 평균 25%의 관세를 매기고, 쇠고기·설탕·담배가 EU국에 들어가려면 50%의 관세를 물어야 한다.

또 농업이 EU 국민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8%에 불과하지만 EU당국은 지난해 전체 예산(1천16억유로)중 43%인 4백30억유로를 농가보조금 등 농업예산으로 썼다. 이에 대해서는 EU 내에서도 지원금 규모가 너무 크다는 지적도 있어서 2004년께부터는 점차 줄여간다는 계획이다.

EU집행위의 칼 프리드리히 팔켄버그 일반상업국장은 "제2차 세계대전 직후 국가별 식량 자급률이 평균 15% 안팎이었으나 최근에는 1백%가 넘어 오히려 생산량을 줄이는데 지원비가 대부분 나가고 있다"며 "지원금이 많이 나간다는 점에서는 그렇지만 식량을 확보하고 식량수출 경쟁력을 가지게 됐다는 점은 성공적"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EU는 농산물시장의 폐쇄성 때문에 다른 나라와 무역분쟁을 겪기도 한다. 90년대 초반 미국과의 바나나 분쟁이 대표적이다. EU가 과거 식민지였던 북아프리카 지역의 바나나에는 무관세를 적용하면서 미국 업자가 농장을 가진 중남미 바나나에는 관세를 적용한 데 대해 미국측이 6년 동안 시정을 요구하다 98년 루이뷔통 핸드백 등 15개 EU산 품목에 보복관세를 적용하겠다고 통보하면서 벌어진 것. 이 문제는 지난해에야 EU측이 2004년부터 단계적으로 무관세를 적용키로 타협해 겨우 일단락됐다.

부다페스트·빈·베를린·브뤼셀·리스본=양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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