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처럼 빨리 늙어가는 한국 "고령자 일자리 대책 시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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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늙어가는 나라 한국. 65세 이상 인구 비중이 2000년 7.2%에서 2019년에 14.4%,2026년에는 20%에 이르는 '압축적 고령화'가 예상된다. 고령화 문제는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며, 그 대책 또한 미룰 게 아니다.

한국노동연구원·경제협력개발기구(OECD)·서울대 세계경제연구소가 공동 주최하고 중앙일보와 노동부가 후원해 '고령화 시대의 노동시장 정책'을 주제로 한 세미나가 21일 열렸다.

참석자들은 취업·퇴직 때 연령 제한을 없애고,연공서열식 임금 구조와 연금제도를 고쳐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 했다.

◇OECD 고령화 프로젝트 마크 키즈 팀장·이재흥 매니저=한국도 고령사회를 대비하고 있지만 대책이 현실적이지 않다.

한국 사람들은 많이 일하고 늦게 은퇴한다. 하지만 늘 실업의 위험에 노출돼 있고 낮은 임금에 고달프다. 더 나은 일자리를 얻기 위한 자기 능력 개발은 생각하기도 어렵다. 1991년 고령자고용촉진법을 만들었지만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법은 60세 이상 정년을 권고해도 기업은 55세를 넘긴 근로자를 꺼린다.

연금제도 또한 허점이 많다.제도만 보면 다른 OECD 회원국보다 국민연금을 많이 받는 것 같다. 하지만 가입자가 적어 혜택을 받는 사람이 많지 않다. 더구나 현행 제도를 유지하려면 젊은 세대의 보험료 부담이 너무 커진다.

무엇보다 고령자를 위한 고용정책이 시급하다. 정년퇴직제를 없애고 연공서열식 임금구조를 바꿔야 한다.

연금제도도 확 고쳐야 한다.국민연금은 세금이 지원되는 기초연금과 퇴직금으로 운영하는 기업연금,개인 차원에서 가입하는 개인연금 등 3단계 구조로 가야 한다. 이중, 삼중으로 연금 보호막을 두지 않으면 많은 고령자가 빈곤의 늪에서 허덕일 것이다.

◇장지연 노동연구원 연구위원=45세 남성 근로자의 경우 평균 은퇴 연령이 63.8세다. 겉으론 OECD 국가 중 정년이 긴 축에 낀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속내는 딴판이다. 농어업과 자영업·일용직 분야의 고령 인구가 많기 때문에 평균치만 높지 정규직 임금 근로자의 정년은 50대 중반이다.45세 이상 경제활동인구 중 노후 생계에 대해 확실한 계획을 세운 경우는 12%밖에 안된다.

연공서열식 임금 구조가 문제다.극소수의 고령자만 높은 지위와 소득을 얻을뿐 대다수 고령자는 퇴출된다. 따라서 최고 임금을 정해 거기에 이르면 조금씩 깎는 '임금피크제'나 촉탁·계약직 형태로 근로시간과 임금을 함께 줄이는 '가교고용'(bridge-employment) 등 다양한 고용·임금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가교고용은 갑작스러운 은퇴의 충격을 덜 수 있는 한 방안이다.

◇허재준 노동연구원 연구위원=보조금 지급 등 정부의 고령자 취업대책은 문제의 소지가 있다. 보조금을 주기보다 근로자가 노력하면 재취업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게 필요하다.

평생교육제나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도입해 근로자들이 여가를 활용해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일정 연령에 이르면 낮은 임금으로 일할 수 있도록 노사간 합의가 필요하다. 아울러 기업으로선 정년퇴직과 신입사원 채용 때 연령을 제한하지 않아야 한다.

사회보장제도도 개선해야 한다.직장생활 초기에는 개인연금 가입을 장려하고, 공적연금이 제대로 유지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철희 서울대 교수=한국 고령 남성들은 세계에서 가장 일을 많이 한다. 60세 이상 고령 남성의 노동참가율은 65년 40%에서 95년 55%로 높아졌다. OECD 국가의 노동참가율이 낮아진 것과 대조적이다.

특히 일하는 65세 이상 고령자의 절반이 농어촌 노인이다. 이들이 사망하면 일하는 고령자수가 급감할 것이다.

그럼에도 농어촌 고령자는 정책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미국 농어촌 고령자들은 나이가 들면 자산을 처분해 노후를 준비하는 데 한국은 그렇지 못하다.

이재광 경제연구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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