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업씨 '수사 청탁' 검찰 불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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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김홍걸씨에 이은 김홍업씨의 구속으로 현직 대통령의 두 아들이 영어(囹圄)의 몸이 되는 사상 초유의 일이 빚어졌다. 홍업씨 혐의의 골자는 국세청·청와대·검찰·금융기관 등에 직·간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며 측근들과 함께 22억여원을 챙겼다는 것이다.

대통령의 아들이라는 특수신분을 이용해 각종 이권에 개입했다는 점에서 홍업씨의 행위는 체육복표 사업자 선정·관급 공사 수주 등의 이권에 개입하며 현금과 주식 등 16억1천여만원을 받은 동생 홍걸씨의 경우와 닮았다.

검찰은 권력형 비리 의혹이 제기된 대통령의 두 아들을 모두 사법처리했다는 점에서 그동안 실추된 위상을 회복하는 계기가 됐다고 자평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실제로 이들이 이권에 어떻게 개입했으며, 대통령 아들의 청탁을 받은 관련 기관들이 일을 어떻게 처리했는지에 대해서는 사실상 밝혀진 게 없다.

검찰은 대통령 두 아들의 입김이 작용한 것으로 보이는 국가기관들의 직무유기 및 직권남용 혐의를 밝혀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

◇'검찰 게이트'터지나=검찰이 밝힌 홍업씨의 혐의 내용과 그의 측근인 김성환씨의 검찰 진술 등을 통해 홍업씨 측이 검찰 고위 간부를 통해 비리 혐의가 있는 기업인들의 '봐주기 수사'를 청탁했다는 의혹이 불거져 검찰을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홍업씨의 직·간접적 영향으로 수사가 축소됐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사건은 ▶2001년 평창종합건설의 심완구(沈完求)울산시장에 대한 뇌물공여 의혹 내사(울산지검)▶2001년 새한그룹 이재관(李在寬)당시 부회장의 무역금융 사기혐의 수사(서울지검)▶1998년 만덕주택 대표 박모씨의 윤병희(尹秉熙)전 용인시장에 대한 뇌물공여 수사(수원지검) 등 세건이다. 이들 사건과 관련해 홍업씨 측근인 김성환와 이거성씨가 5천만~7억5천만원을 해당 업체로부터 받았다.

당시 수사 검사들이나 간부들은 "외부 청탁이나 압력은 없었으며 정상적으로 사건이 처리됐다"고 밝히고 있고 수사팀도 아직까지 이들 사건에 홍업씨의 영향력이 어떻게 작용됐는지 제대로 파악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이미 이들 사건 수사과정에서 김성환씨가 '홍업씨의 뜻'이라며 선처를 부탁했다는 정황과 진술이 있어 홍업씨의 개입 정도와 청탁을 받은 검찰 관계자가 누구인지 조사가 불가피해졌다.

검찰도 수사 방침을 굳히고 있어 수사 무마 청탁이 성사된 것으로 드러날 경우 그 파장은 '이용호 게이트'때의 파장을 능가할 전망이다. 당시 수사 검사나 지휘선상에 있던 검찰 간부들이 무더기로 징계 또는 사법처리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른 수사 과제=홍업씨 사법처리의 파장은 검찰뿐 아니라 청와대·국세청·신용보증기금·예금보험공사 등으로도 번질 전망이다.

홍업씨는 오시덕 전 주택공사 사장의 비리 의혹에 대한 청와대 내사 중단 청탁과 함께 돈을 받은 혐의가 드러났다. 검찰은 홍업씨가 청와대 누구에게 청탁을 했는지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고 밝혔지만, 홍업씨가 청와대 등 사정기관에 영향력을 미친 것으로 드러날 경우 청와대 관계자의 처리문제는 물론 대통령 아들의 국정개입 논란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검찰은 청와대 수석급 인사가 이 문제와 관련된 것으로 보고 조사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또 성원건설 화의 인가 및 부채 탕감에 대한 청탁건과 관련해서는 예금보험공사 이형택 전 전무를 통해 예보 간부에게 청탁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밖에 수사 과정에서 의혹이 제기된 홍업씨가 운용해온 수십억원의 출처, 대선 잔여금 활용 여부, 국정원 자금의 유입 여부 등도 검찰이 파헤쳐야 할 과제다.

이상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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