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 약수 따라 삼천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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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뭇잎 띄운 약수를 음미해 보자. 약수는 입에 머금고 씹듯이 천천히 마셔야 효과가 있다고 한다.

음력 6월 15일 유두(流頭)엔 계곡이나 폭포를 찾아 머리를 씻고 약수(藥水)를 마시는 풍습이 있었다. 특히 빈혈이나 위장병을 앓는 이들은 약수를 약 삼아 마셨다. 약수란 약효가 있는 샘물을 이른다. 그러나 과학적으로 약효가 입증된 약수가 없는 마당이니 지하수든 석간수든 오염되지 않은 깨끗한 물이라면 그것만으로도 약수로 불릴 자격이 있을 터다. 그만큼 요새는 깨끗한 물을 찾기가 힘들게 된 때문이다.

한반도엔 신비한 효능을 가졌다는 약수터가 제법 구석구석에 자리잡고 있다. 하지만 요즘 약수터 주변의 마구잡이개발과 지나친 약수터 보호의식이 발동해 과잉보호를 한 탓에 메말라버린 샘이 늘어가고 있다. 옛 명성만 듣고 찾아갔다가 말라버린 물을 보고 돌아나와야 할 땐 서글프고 참담하다.

신비한 효능을 가졌다는 약수를 찾아 떠난 이번 취재여행에서 설악산 주전골 들머리에 있는 500년 된 오색약수, 경북 영덕군 영해면 묘곡리 초수골약수, 경남 창녕군 영산면 함박산약수에서 그런 서글픔을 느껴야 했다. 지역 주민들은 새로 들어선 호텔에서 개발한 탄산온천, 혹은 근처 절의 지하수 개발, 혹은 대량 취수나 물길 돌리기 작업 등으로 물이 오염되거나 말라버렸다고 추측하며 안타까워했다. 지나친 관심과 이기심, 무지로 역사와 전설을 지닌 좋은 약수들을 말려버리는 사태가 이곳뿐 아니라 곳곳에서 속출하고 있을 터다.

어머니의 병을 낫게 했다는 효자의 전설을 간직한 유명한 이 약수는 기자가 찾아간 그날도 경남 창원에서 7명의 할머니께서 물을 받으러 와 계셨다. 이른 아침 효험이 좋다는 이 약수를 받으러 한 시간 넘게 버스를 타고 오셨단다. 그러나 두 개의 수도꼭지로 연결된 ‘약수’는 한 쪽에서만, 그것도 아주 감질나게 졸졸 흘러나오고 있었다. 할머니들은 끊어질 듯 끊어질 듯 흘러나오는 수도꼭지 앞에 기도하듯 쪼그리고 앉아 물을 받고 계셨다. 1.8L짜리 페트병 하나에 물을 받는 데 40분 이상이 걸렸다. 주민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원래 샘터에 파이프를 연결해 물을 아래로 끌어오는 공사를 한 뒤 물줄기가 가늘어졌단다. 더군다나 물 저장고는 시멘트로 만들었다는 말에 할 말을 잃었다. 그들은 시멘트저장고의 문제점은 생각도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잘 보존되고 있는 약수도 꽤 남아 있었다. 이번 취재 여행 중 들렀던 강원도 정선 화암약수, 양구 후곡약수, 충남 부여 고란약수, 전남 구례 당몰샘, 경북 청도 용천약수가 비교적 발견 당시나 지금이나 물의 양과 맛이 변치 않았다.

좋은 물에 대한 갈증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조상들이 약으로 여기고 마시던 약수들이 오염되거나 마르지 않고 오래오래 좋은 약수로 남아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글=윤서현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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