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8강]피말린 117分… 감격의 대역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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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한국 축구대표팀의 월드컵 본선 8강 진출은 아시아 축구에서 전례가 없는 쾌거다.

조별리그에서 우승후보로 꼽히던 포르투갈을 주저앉히고 16강전에서 국제축구연맹(FIFA)랭킹 6위의 강호 이탈리아마저 꺾음에 따라 한국 축구는 이번 대회를 통해 단순히 축구 변방에서 벗어난 데 그치지 않고 축구 강국의 대열에 당당히 합류하게 됐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과 아시안컵에서의 잇따른 부진으로 한때 아시아권에서조차 흔들렸던 입지도 확고하게 다져 아시아 축구의 맹주임을 재확인하게 됐다. 아시아 축구는 이전 월드컵에서도 16강·8강에 진출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한국 대표팀의 이번 8강 진출은 그때의 성적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1966년 북한이 잉글랜드 월드컵 8강에 오르긴 했지만 당시는 출전 국가가 지금의 절반인 16개국이었다. 때문에 네나라가 싸우는 조별리그를 통과하면 바로 8강이었다.

94년 미국 월드컵에서는 사우디아라비아가 '16강 제도'가 생긴 86년 멕시코 월드컵 이후 아시아 국가로는 처음으로 16강에 진출했다. 그러나 조별리그 상대국들이 네덜란드·벨기에·모로코 등으로 한국의 이번 조별리그 상대국들에 비해 중량감이 떨어졌다. 게다가 사우디아라비아는 네덜란드에 2-1로 패해 2승1패로 조별리그를 2위로 통과했다. 당시에는 출전국도 24개국이었다.

90년 이탈리아 월드컵에서 카메룬은 개막전에서 전 대회 우승팀 아르헨티나를 꺾는 파란을 연출하며 8강까지 진출한 돌풍의 팀이었다.

94년 월드컵과 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나이지리아는 연속으로 16강 진출에 성공했다. 아프리카 국가들의 잇따른 선전은 90년 두장이던 아프리카 대륙의 본선 쿼터를 98년 5장까지 늘리는 배경이 됐다.

한국의 8강 진출과 일본의 16강 진출 등 공동 개최국 두나라의 놀랄 만한 성적은 국제 축구계에서 아시아 축구의 발언권을 높이는 든든한 발판이 될 전망이다.

상황에 따라 현재 3.5장인 아시아 대륙의 본선 쿼터가 확대될 수도 있다.

이번 쾌거는 명실상부한 축구강국으로 거듭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한국 축구는 이번에 그 어느 때보다도 과감하게 선진 축구의 노하우를 받아들여 치밀한 계획아래 체계적으로 준비했다. 그결과 하기에 따라 신체조건이나 기량 차이는 충분히 극복할 수 있는 장애물임을 확인했다.

이번 대회를 통해 대한축구협회 수뇌부와 출전 선수들이 쌓은 '이기는 경험'은 향후 월드컵에 출전할 때 언제고 빛을 발할 수 있는 값진 재산으로 고스란히 남게 됐다.

대표팀에 대한 과감한 투자와 개혁을 국내 프로축구나 학원 축구로 하향 확산시키는 일은 진정한 축구 강국으로 자리잡기 위해 꼭 시행해야 할 과제다. 대다수의 무관심 속에 '그들만의 리그'로 치러지는 프로리그에 대해서도 더욱 관심과 성원을 보내야 할 것이다.

대전=특별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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