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거품경제' 시절 경쟁적으로 전세계 예술품들을 사모았던 일본 기업들이 오랜 경기침체로 어려움이 가중되자 이를 다시 국내외에 팔아넘기고 있다고 미 시사주간지 뉴스위크 최신호(24일자)가 보도했다.
일본의 석유재벌인 이데미쓰 코산(出光興産)은 최근 창업자인 고(故) 이데미쓰 사조(出光佐三)가 70여년간 수집했던 중국 도자기·회화·서예작품을 1억1천6백만달러(약 1천3백92억여원)에 외국에 매각했다. 뉴스위크는 "일본 내에서도 진귀한 작품으로 인정받던 이 예술품들을 판 것은 2001년 순이익이 전년도에 비해 무려 70% 감소한 데 따른 눈물겨운 조치였다"고 보도했다.
한 일본인이 90년 소더비 경매에서 당시 기록적인 경매가였던 7천8백10만달러(약 9백37억여원)를 주고 구입했던 르누아르의 '갈레트의 풍차'도 이미 서양인의 손에 넘어갔다. 도쿄의 한 예술품 딜러는 "피카소·반 고흐·샤갈 등의 그림 수백점도 일본을 떠나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일본기업이 소장하던 일본 골동품도 매각 대상이다. 해운재벌이었던 만노 야스아키(萬野裕昭)가 소장했던 고검(古劍)·도자기·서예품 등 1백50점이 지난해 6월 크리스티 런던 경매장에서 6백만달러에 팔렸다.
이같은 현상은 일본 경제의 거품이 빠진 90년대 말부터 본격화했다는 게 뉴스위크의 설명. 99년에는 일본 소비자 금융회사인 레이크가 재정 악화 때문에 명화 등 수백점을 3억달러에 팔아치운 적도 있다.
뉴스위크는 "팔리는 곳은 주로 미국으로 추정되지만 매각자들이 수치심 때문에 구매자를 밝히지 않는다"며 "예술품 해외 유출을 막는 유일한 처방은 일본 경제의 회복"이라고 지적했다.
강홍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