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스패스로 빗장 부숴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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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경쾌한 행진곡풍 국가처럼 이탈리아는 조별 리그를 힘차게 시작했다. 그러나 크로아티아전 패배로 제동이 걸렸다. 멕시코전에서는 선취골을 허용하는 고전 끝에 16강에 겨우 턱걸이했다.

기자는 한국 취재진으로는 유일하게 이탈리아의 조별 리그 세 경기를 모두 현장에서 지켜봤다. 이탈리아는 분명 세계 최고 수준의 경기력을 갖고 있었지만 의외로 허점도 보였다.

▶빗장수비와 '필살기'역습

이탈리아 수비의 기본 전형은 세명 혹은 네명의 일자백이다. 왼쪽부터 말디니-네스타-칸나바로가 서고, 포백일 경우 오른쪽에 파누치가 포진한다. 그러나 수비시에 이들이 일자로 서는 경우는 거의 없다.

상대가 왼쪽을 치고 들어올 경우 오른쪽의 두명은 대각선 방향으로 움직여 왼쪽 수비 뒤로 들어간다. 일자가 순식간에 사각형으로 바뀌는 것이다. 상대 공격수는 1차 방어선을 뚫더라도 어느 새 앞을 막아선 2차 수비망에 당황하게 된다.

이것이 빗장수비(카테나치오)의 핵심이다. 수비할 때 공간을 좁히고 볼이 빠져나갈 길목을 지키는 게 거의 본능적이다.

그만큼 위치선정이 뛰어나고 쓸데없는 공간에 서 있는 선수가 없다. 대신 볼의 반대편 공간은 비워두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한국은 빠른 크로스로 비워놓은 공간을 찾아들어가는 공격이 필요하다.

이탈리아 수비수들의 롱패스 능력은 세계 최고다. 인터셉트나 태클로 볼을 차단하면 지체없이 전방으로 장거리 패스를 날린다. 이 역습에 말려 에콰도르가 허망하게 무너졌다.

활동범위가 넓은 칸나바로가 경고 누적으로 빠지는 것은 한국으로서 다행이다.

▶토티는 오른발, 비에리는 왼발

플레이메이커 겸 처진 스트라이커 프란체스코 토티는 잉글랜드의 데이비드 베컴처럼 철저히 오른발을 쓴다.

또 보디 밸런스가 뛰어나 웬만한 태클이나 몸싸움에서는 볼을 뺏기지 않는다. 아크 근처에서 프리킥을 얻으면 오른발로 감아차 왼쪽 구석을 노린다. 왼쪽 코너킥 때는 휘어져 곧바로 골대로 날아가는 킥이 많다.

스트라이커 크리스티안 비에리는 왼발을 주로 쓴다. 그는 왼발로 두골, 헤딩으로 한골을 얻었다. 에콰도르전 두번째 득점 상황은 그의 습성을 잘 보여준다. 골키퍼를 맞고 골 쪽으로 흐른 볼을 쫓아간 비에리는 오른발로 찰 수 있음에도 굳이 스텝을 맞춰 왼발로 찼다.

왼발이 훨씬 자연스럽고 편하다는 뜻이다. 비에리는 왼발보다 상체가 더 무섭다. 복서 출신답게 그는 몸싸움에서 지는 법이 없고, 헤딩능력도 탁월하다.

공중볼 경합을 벌이면서 팔꿈치로 상대를 가격하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그는 멕시코전에서 두명이 협력수비를 펼치자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다.

오사카=정영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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