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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굴복 강요하는 여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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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지난 21일 막을 올린 여야 4인 대표회담은 근래에 보기 드문 협상의 정치력을 발휘해 주목을 받았다. 그 시작은 깔끔했다. 마라톤 협상을 벌인 첫날 여야가 한발씩 양보하며 4개 항의 합의문을 도출한 것이다. 그러나 이후 회담 시간이 짧아지며 내용도 부실해져 갔다. 급기야 회담 5일째인 지난 26일 열린우리당 천정배 원내대표는 "4인 회담은 아무런 진전이 없었다"며 회담의 파국 가능성을 시사했다.

27일 여야는 '네 탓'을 하기에 바빴다. 열린우리당 지도부는 "우리 당은 쟁점 법안에 대해 유연한 협상안을 가지고 회담에 응했지만 야당 측은 단 한치도 타협안이나 협상안을 내놓으려 하지 않고 동어반복만을 하고 있다"고 한나라당을 성토했다. 여당은 "특히 박근혜 대표의 강경한 태도가 협상의 걸림돌"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은 "여당은 남 탓만 하지 말고 당내 강경파부터 설득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여당이 제기하는 박 대표 책임론에 대해선 "적반하장이며 비겁한 행동"이라고 일축했다.

양당이 서로를 비판하는 대목엔 모두 일리가 있어 보인다. 회담을 지켜본 양당 관계자들에 따르면 국가보안법의 경우 '폐지 절대 불가'를 주장하던 한나라당 측은 "대체입법도 가능하다"는 유연한 입장을 제시했다. 하지만 열린우리당 측의 태도는 아직 완강하다고 한다. '보안법 폐지 후 형법 보완'이란 당론을 관철하겠다고 버티고 있다고 한다.

사립학교법 문제에 있어선 열린우리당이 기존의 입장에서 조금 물러나 "개방형 이사의 숫자를 3분의 1 이하로 한다는 방침에서 '4분의 1 이하'로 완화할 수 있다"는 제안을 했다. 그러나 한나라당 지도부는 "개방형 이사제는 안 된다"는 당론에서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고 있다. 협상에 진전이 없는 까닭은 양당 지도부가 이처럼 '당론'만을 내세워 상대의 굴복시키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양당이 자기들의 당론만 관철시키겠다고 한다면 애당초 4인 회담은 할 필요조차 없었다. 협상이란 서로 조금씩 양보하면서 타협점을 찾아가는 것 아닌가. 양측은 4인 회담을 하기로 했을 때의 초심으로 돌아가길 바란다. 그러면 '국민'이 보일 것이고, 협상의 길도 보일 것이다.

이가영 정치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