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독불장군은 안된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미국의 많은 우방들은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일방주의적 외교정책에 분개하고 있다. 아이로니컬하게도 다자주의 외교가 무엇인지를 설명하는 가장 훌륭한 발언은 부시 대통령의 입에서 나왔다. 그는 2000년 대선 유세 중 "미국이 무례하게 굴면 우방은 우리를 고깝게 볼 것이고, 우리가 겸손하면 경의를 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제적 규범은 미국에게 무제한적인 '행동의 자유'를 보장해주지 않는다. 물론 다른 나라들도 행동에 제약을 받기 마련이다. 미국은 유엔부터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까지 각종 국제기구에 적을 두고 있다. 이 때문에 미국이 국제사회에서 '나홀로 자치(自治)'를 밀어붙일 여지를 줄이기는 하지만 역으로 일부국가들이 미국을 적으로 여겨야 하는 이유를 줄이는 데 기여하는 것도 사실이다. 다자주의적 접근 방식이 항상 선(善)은 아니고 미국도 경우에 따라선 일방주의 전술을 사용해야 한다. 문제는 이를 어떻게 선별하느냐다. 국가 생존이 걸린 상황에선 일방주의적 조치를 배제할 수 없다. 유엔 헌장 51조도 적법한 자위권 발동을 허용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이 일방적으로 감행한 아프가니스탄 공격은 유럽의 나토 동맹국들로부터 지지를 얻지 못했다.

다자주의가 항상 최선의 결과를 가져오는 것도 아니다. 러시아·중국은 1999년 코소보에서의 반인륜적 범죄를 막기 위해 병력을 파견키로 하는 유엔 안보리 결의안에 반대했다. 결국 미국은 안보리 결의 없이 독자적 행동에 나서기로 결정했고, 나토 회원국들은 강력한 지지와 함께 미국편에 섰다.

그러나 모든 국가의 이해관계가 걸려 있는 국제 이슈들은 다자주의적 접근을 따를 수밖에 없다. 서로의 협조 없이는 해결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온난화 방지 협약이 가장 좋은 예다. 미국은 온실가스를 가장 많이 배출하지만 따지고 보면 그 배출 원료의 75%는 외국에서 수입한 것들이다. 상호 협력하지 않고선 미국 스스로 온실가스 배출을 통제할 수 없다는 얘기다. 전염병 확산 방지, 국제금융시장 안정, 국제무역 시스템 구축, 대량살상무기(WMD)통제 문제 역시 다자간 협력의 틀 안에서 풀어가야 한다.

군사 문제의 경우에도 미군의 단독 개입은 최소화돼야 한다(여론조사에서 미국인 3분의2는 다국적군 구성을 지지했다). 미국은 유엔·나토가 조직하는 평화유지군에 작은 지분만을 갖는 게 바람직하다. 다국적군이 주는 상징적 정당성은 병력 파견 후에 부수적으로 따르는 정치적 논쟁 등의 비용도 줄여준다. 한마디로 미국의 외교정책은 다자주의를 우선해야 한다. 그러나 모든 다자주의를 떠안아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때때로 미국이 일방주의를 강행할 수밖에 없는 상황도 있겠지만, 평소 다른 나라와 성실히 협상하는 자세를 보인다면 반발은 크지 않을 것이다. 일방주의자들이 스스로의 유혹에 쉽게 굴복하면 다자주의가 대세인 국제사회에서 미국은 번번이 실패할 것이다. 세계 유일의 수퍼파워 미국도 '다자주의 우선'이라는 평범한 법칙을 따라야 한다.

정리=김준술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