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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나정 우물 아닌 '神宮'터 가능성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6면

8각 건물은 지금까지 삼국 가운데 고구려의 탑(塔)형식으로만 알려져 왔으며, 신라에서 8각 건물터가 발견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신라 탑의 형식은 모두 4각형이다. 이번에 확인된 건축의 형식이나 출토 유물 등으로 미뤄 나정은 실존 여부가 확인되지 않았던 신궁(神宮·박혁거세를 모시는 사당) 터일 가능성이 작지 않아 보인다.

'나정'과 '신궁'은 모두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기록된 박혁거세 관련 전설의 일부. 『삼국사기』에 따르면 나정은 박혁거세가 나온 알이 발견된 곳이다. '나정 우물가에 번개 같은 이상한 기운이 드리워지고 흰말이 엎드려 절하고 있어 사람들이 가보니 말은 하늘로 올라갔고 그 자리에 자줏빛 알이 남았는데, 알을 깨어보니 사내아이가 나왔다'는 탄생설화다. 현재 그 우물터로 추정되는 곳에는 1.3m 크기의 사각형 화강암이 덮여 있고, 그 남쪽 옆에는 일제시대에 세운 유허비(遺墟碑)와 전각이 세워져 있다.

우물터와 유허비를 둘러싸고 있는 담장이 낡아 경주시가 사적 정비 차원에서 담장을 증축하기 위해 부근에 대한 발굴을 전문기관에 의뢰한 것이 발굴의 계기다. 증축을 위한 형식상의 절차로 시작된 발굴인데, 막상 땅을 파보니 예상치 못했던 흔적들이 속속 드러났다.

첫째는 화강암에 덮여 있는 우물터가 우물이 아니라는 점이다. 우물터엔 우물 흔적이 없고, 대신 흙을 곱게 단단히 다진 건물터만 나왔다. 우물이 아니라 건물이 서 있었다는 얘기다.

둘째로 담장 바깥쪽에서 기둥을 세운 흔적이 50여 곳이나 드러났다. 돌무더기를 쌓아 초석(礎石)을 대신하는 적심(積心)들이다. 그림을 그려 연결해본 결과 한 변의 길이가 8m, 폭 20m 가량의 대형 8각형 건물을 세웠던 기둥 자리임이 확실했다.

셋째는 적심 바깥쪽으로 둥글게 만들어진 돌 기단(基壇·집터를 돋우고 둘러싼 구조물). 역시 매우 중요한 건물이 세워졌던 터임을 확인해주는 증거다.

발굴 과정에서 출토된 유물들은 시대측정의 기준이 된다. 각종 기와 조각들이 나왔는데,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통일 이전 신라 기와도 섞여있어 삼국시대부터 건물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각종 문양이 새겨진 기와 조각의 품질로 미뤄 일반 가옥의 흔적이 아님은 확실하다.

신궁은 『삼국사기』에 따를 경우 487년 소지마립간이 '시조가 탄생한 나을(乙)에 세웠다'고 하는데, 지금까지 정확한 장소는 알려지지 않았다. '시조가 탄생한 나을'이라면 '나정'일 가능성이 크지만 객관적인 입증 자료는 전혀 없었다. 그런데 이번 발굴 결과 건물터가 확인됨에 따라 나정에 신궁이 건립됐을 가능성은 한결 커진 셈이다.

신궁일 가능성을 크게 하는 또 다른 방증은 나정 인근에 있는 오릉(五陵). 정식 발굴을 해보지 않았기에 알 수 없지만 전설에 따를 경우 이 곳은 박혁거세의 무덤이다. 박혁거세가 죽어 승천했는데, 칠일 뒤에 주검이 다섯 조각으로 나눠져 땅으로 떨어졌다고 한다. 다섯 조각을 각각 묻어 능이 다섯 개란 얘기다.

현장 지도를 맡은 문화재위원 정재훈(한국전통문화학교 석좌교수)씨는 "극히 일부만 발굴한 현 단계에서 뭐가 있었다고 속단할 수는 없다. 주변에 대한 본격적인 발굴이 필요하다"고 전제한 뒤 "일단 신라인들이 8각형의 대형 건물을 세웠다는 사실이 처음으로 확인된 것은 소중한 성과며, 그 지역의 특성이나 각종 기록으로 미뤄볼 때 건물의 성격이 박혁거세와 관련됐을 가능성이 작지 않다"고 말했다.

오병상 기자

박혁거세(朴赫居世)가 태어난 곳으로 알려진 경주 나정(井·사적 245호)에 대형 8각 목조건물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경주시의 의뢰를 받아 지난 5월 21일부터 경주시 탑동 나정 일대 2백여평을 발굴해온 중앙문화재연구원(원장 윤세영)은 최근 폭 20m 크기의 8각 목조건물을 세웠던 초석과 기단의 흔적을 찾아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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